접근도로조차 없고 주변에 혐오시설이 들어설 땅을 '전원주택 및 상가가 들어설 땅'이라고 속여 판 기획부동산업자가 사기사실이 들통나 처벌을 받자, 이번엔 국세청을 상대로 사기행각 전모를 밝혀가며 '자신이 사기꾼'임을 적극 강조하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 사업자는 숨기고 싶을 법한 자신의 사기전과를 국세청 문턱에서 소리 높여 밝혀야만 했을까. 그것은 그가 자신의 사기사건을 국세청이 인정해야만 한 푼이라도 더 건질 수 있다는 것까지 꿰뚫고 있는 세법의 고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세심판원은 20일 "서울에서 기획부동산을 하는 A회사가 '사기임이 드러나 땅을 산 사람들에게서 땅을 되사줬는데, 사기로 원인무효가 된 시점이 아닌 땅을 되사준 시점으로 법인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심판청구를 제기, 심리결과 이를 인용했다"고 밝혔다.
심판원에 따르면 A회사는 지난 2004년 9월 충북 충주에 위치한 임야 3만545㎡를 사들였는데, 이 땅은 해발 190m의 험한 악산(惡山)으로 접근할 도로조차 없는 속칭 '맹지'일 뿐만 아니라 향후 도로개설계획도 없는 땅이었다.
또 그 임야 옆에는 충주 첨단산업단지의 폐기물처리시설과 위험물저장 및 처리시설이라는 '혐오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전원주택지나 상가지역으로 개발이 불가능, 수년 안에 급격한 지가상승은 기대할 수조차 없는 상황.
그러나 이 땅은 A회사가 사들여 수백명의 텔레마케팅 등을 고용한 뒤에는 화려하게 덧칠됐다. 바로 "첨단산업단지 옆의 좋은 토지가 있는데 전원주택이나 상가를 지을 수 있고, 2∼3년 내에 평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이 될 것"이라는 사기를 위한 미끼가 된 것.
A회사는 땅을 사들인 2004년 9월부터 K씨를 시작으로 이같은 사기수법을 통해 무려 122명에게 땅을 쪼개 팔았으며, 2005년에도 땅을 사면서도 현장 확인조차 않는 순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머지 땅을 팔아치웠다.
A회사의 사기행각은 2006년에야 들통이 났다. 땅을 사고도 그 때가 돼서야 현장에 와 본 일부 매수인들은 말문이 막힐 만큼 너무 기가 차서 A사를 고소해 유죄판결을 받게 했고, 이듬해 나머지 매수인들도 고소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되찾았다.
2006년과 2007년 A회사는 재판에 앞서 중형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사기로 판 땅에 대해 피해자들과 대부분 합의하거나 계약을 해제하는 등으로 피해를 회복시켜줬다는 것이 심판원 설명.
당시 법원은 "A회사는 심각한 사회문제인 부동산투기현상을 이용해 다수의 피해자로 하여금 거액의 전매차익을 얻었다"며 "피해자의 수와 피해규모 정도 등에 비춰 죄질은 나쁘지만, 잘못을 반성하며 피해자들의 피해를 회복시켜준 점을 참작한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A회사는 곧바로 국세청으로 눈을 돌렸다. 2004∼2005년에 걸쳐 팔았던 임야가 사기행위로 원인무효가 된 만큼, 당시 냈던 법인세는 되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A회사 입장.
그러나 국세청은 사기이든 아니든 임야를 매수인들에게서 되사준 것은 '합의'에 의한 것인 만큼, 2004∼2005년 법인세를 조정할 것이 아니라 땅이 원 주인에게 돌아간 2006∼2007년 법인세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며 A회사 청구를 거부했다.
손익의 귀속시기를 2004∼2005년으로 하든 2006∼2007년으로 하든 국세청이 되돌려 줄 세금액수는 똑같지만, 많이 낸 세금에 대한 이자성격인 국세환급가산금은 오래 전 법인세를 조정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만큼 A회사는 세법의 고수였던 셈.
심판원은 이에 대해 "민법에선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고, 취소된 법률행위는 처음부터 무효인 것으로 보는 것"이라며, "A사 토지에 대한 합의해제는 기망(사기)에 의한 계약취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A회사 손을 들어줬다.
부동산의 양도 및 반환경위로 봐 부득이한 사유에 의한 계약해제로 인정되므로, 계약해제에 따른 손익의 귀속시기는 당초 매매계약시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심판원의 결정이다. 죄야 밉지만 법은 법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계기가 된 셈.
참고 심판례 : 조심2012서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