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 안목에서 '외환안정기구' 설치 필요"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통화불일치 등 일부 약점이 드러났다며 위기대응력을 위해 외환안정기구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9일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와 경제연구원의 정규일 국제연구연구실장, 박하일 전문연구원은 한국은행의 'BOK 이슈 노트'에 '한국 금융시스템의 위기 대응력 강화를 위한 장기적 제안'이라는 보고서를 싣고, 이같이 주장했다.
신현송 교수 등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통화불일치와 만기불일치에 취약하다는 점이 목격됐다"고 지적했다.
우선 통화불일치란 외화표시 자산과 부채의 규모 불일치로 인해 환율 변화에 따른 손실이나 이익이 발생하는 위험을 뜻하며, 만기불일치는 자산과 부채간 만기불일치로 인해 부채가 회수될 때 자산을 회수해 즉지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유동성 위험을 일컫는다.
신 교수 등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금융기관의 해외 단기차입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에 따라 금융기관의 자금사정이 해외여건 변화에 민감한 구조로 변화했다"며 "이런 상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했고 선진국 은행의 디레버리징으로 인해 국내 은행들의 외화차입이 대규모로 축소되면서 원화 환율이 급등하는 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러한 취약성이 발생하게 된 주요원인 중 하나로 "기업들의 선물환매도거래 상대방이 된 은행들이 선물환 매입에 따른 외화자산 매입초과의 환위험을 해지하는 과정에서 해외차입을 증대시켰던 데 있다"고 꼽았다.
선물환매도거래란 현시점에서 미래 일정시점에 매각할 달러화의 환율을 정하고 해당 시점이 도래했을 때 미리 정해진 환율로 달러화를 인도하고 그에 해당하는 원화를 수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업체 등 수출기업이나 자산운용사 등의 경우 미래에 외화자산을 받게 되는데 조선업체는 선박건조 공정에 따라, 자산운용사는 보유중인 해외주식이나 채권 등을 매각할 때 외화를 수취하게 된다.
이때 기업들은 환율 변화에 따른 환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은행과 선물환 매도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은행은 외화 매입초과에 따른 환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주로 해외 단기차입을 해 왔다.
신 교수 등은 "이러한 거래로 인해 은행부문 전체 대차대조표상 외화자산과 부채의 규모는 일치하게 되나 이 과정에서 해외차입이 늘어났다"며 "2008년 위기시에는 늘어났던 해외 단기차입의 차환이 중단되면서 한국 금융시스템이 혼란에 빠지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한국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제고를 위해서는 기업의 해지거래가 은행의 해외차입으로 연결되는 파급경로를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신 교수 등이 제도적 보완 장치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이 바로 은행을 대신해 기업의 선물환 거래 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외환안정기구'의 설치다.
이들이 제시한 외환안정기구의 모델은 이윤극대화를 추구하지 않으며 영업자금 전액을 부채가 아닌 자본금으로 조달하며, 자산 및 부채 평가는 모두 미 달러화로 이루어진다.
또 기업이 실수요에 따른 해지거래를 위해 선물환을 매도할 경우 외환안정기구가 이를 수동적으로 매입한 다음 이에 따른 외화자산 증가를 다른 외화자산 축소로 상쇄한다.
결국 외화표시 자산과 부채를 일치시키기 위한 해지목적의 해외차입 유인이 없어지는 것.
신 교수 등은 "기존의 거시건전성 정책수단은 향후 세계경기가 호전돼 조선업체의 선박수주나 내국인의 해외투자 등 실수요 관련 거래가 다시 급증할 경우 그에 따른 기업의 해지수요와 은행의 해외차입을 억제하는데 한계가 있으나 외환안정기구는 이러한 한계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들은 외환안정기구의 추가적인 장점으로 자산 및 부채가 미 달러화로 평가되기 때문에 환차익이나 환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없고, 금융시장 접근성이 낮은 중소기업에 환헤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용창출력이 높은 중소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신 교수 등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제원리에 입각해 외환안정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외환안정기구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재원조달 문제, 동 기구의 지배구조, 외환시장 발전 및 대외신인도에 미치는 영향, 기존 금융기관과의 관계 등에 대해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