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보험을 들 때는 보험계약과 관련한 위험정도를 판단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사항을 보험회사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고지의무 또는 계약전 알릴 의무라고 한다.
이 의무를 위반하여 거짓 또는 부실하게 고지를 하여 그와 관련된 원인으로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보험회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거나 계약을 해지하게 된다. 암 고혈압 당뇨병 환자가 보험청약서에 그 내용을 기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병으로 사망하게 된 경우에도 보험금을 지급하면 아픈 사람들 에게 유리한 상황이 벌어진다. 나머지 선량한 고객은 보험료 인상 등으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손해보험도 마찬가지여서 보험회사가 위험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 즉 화재보험의 경우 물건이 상습침수구역에 있는 지, 폭죽공장 옆에 있는 지, 군대 사격장 부근에 있는 지 또는 소화전 등 소방기구가 제대로 구비되어 있는 지 등 관련정보를 요구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금융감독원에서 정한 표준청약서를 기초로 각 보험사가 필요한 정보를 묻고 있다. 생명보험의 경우 고지의무 부분이 직업, 건강이력, 취미, 재산/소득 내역 등 2페이지 내외로 간단한 편이다.
그러나 보험 선진국의 경우 40여 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요구한다. 흡연관련 질문도 궐련이냐, 시가냐부터 시작하여 하루에 몇 개비를 피우며 흡연 시작 시기 및 아침 식사전 흡연여부 등까지 세세하게 묻는다.
에이즈가 창궐한 이후 이에 관련한 질문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고 자세하다. 먼저 섹스상대를 배우자, 동거자, 원나잇 스탠드 등으로 구분하고 이어 이성연애, 동성연애, 양성연애로 구분하여 성적기호를 묻는다. 이어 성행위시 성병 예방기구의 사용여부를 적게 하고 직업여성과의 관계여부, 타인사용 주사바늘의 사용여부, 항문성교 여부 등을 묻는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정도의 고지의무를 요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황하고 불쾌하여 보험청약 과정이 순조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쪽 나라는 워낙 혼외정사가 많고 마약사용자가 많아 에이즈 위험이 높은 만큼 보험사의 그런 조치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이고 에이즈 감염율도 낮아 몇가지 간단한 고지의무 만으로 보험청약과정이 끝나는 것이 너무 좋다. 시시콜콜하게 나는 정상적인 이성연애자이며 창녀와는 관계한 적이 없으며 다른 사람의 주사바늘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혀야 한다면 보험가입을 주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2페이지짜리 고지의무는 좀 부족한 듯하다. 보다 고도화되고 전문적인 언더라이팅을 위해 고지의무를 자세하게 해야 될 때가 됐다고 본다. 과학적으로 위험을 분석하여 양호한 피보험자는 보험료를 싸게 받고 위험도가 높은 피보험자는 보험료를 비싸게 받아야 공정할 것이다.
[약력] 삼성생명 부장, AIG생명 부장, GE캐피탈코리아 이사, 에이스(뉴욕)생명 전무, 조세일보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