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와 복지 이슈에 편승, '증세(增稅)' 필요성을 외치던 빅3(박근혜·문재인·안철수)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 증세 문제는 천문학적 비용이 수반되는 복지공약의 현실성(재원마련 방안)을 가늠해 주는 척도로 주목을 받았다.
대선 레이스 초반, 빅3 후보들의 정책노선은 증세 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뚜렷했다. 현실적 재원 마련 방안이 없는 복지확대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일까지 28일 남은 현재, 빅3 후보들의 증세와 관련한 입장은 제각각으로 갈린 형국이 됐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아예 증세노선에서 이탈한 모습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만이 홀로 증세노선에 남은 상황이 됐다.
□ '증세 無' 가닥잡은 朴·安 = 박 후보와 안 후보는 사실상 증세를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박 후보는 그동안 증세에는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경제민주화를 이끌었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탓에 '혹시'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과 결별 수순을 밟고 있는 박 후보는 증세에 대해서도 이제 결별을 선언했다.
박 후보 스스로도 "어려운 시절에 국민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며 "국민들에게 (증세로) 부담을 안기기 전에 나라 살림이 투명하게 운영 됐나 챙기고 씀씀이가 헤픈 게 없는지 따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라고 발언, 사실상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특히 빅3 중 유일하게 공약에 필요한 재원을 추계해 발표한 박 후보는 153조원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증세'가 빠졌다. 재정개혁 등을 통해 아껴쓴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안 후보 역시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것에는 박 후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다만 원칙적인 면에서는 증세를 찬성한다.
오히려 문 후보가 주장하는 부자증세보다 한발 더 나아간 보편적 증세를 주장한다. 보편적 증세가 훨씬 더 효율적이고 조세정의에 부합한다는 측면에서 전문가들은 환영의 뜻과 더불어 구체적인 안을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구체적 증세안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안 후보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높아졌다. 진보 쪽 시민단체에서는 안 후보야말로 조세정의를 구현할 인물로 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20일 한 토론회에서 "당장 내년부터 (증세)하면 지금 조세정의가 확립돼 있지 않고 투명성이 부족해 국민들이 납득을 못할 것"이라며 "재정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순서를 밟자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사실상 증세는 마지막 카드라는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 文, 힘빠진 '나홀로 증세' = 문 후보가 속해 있는 민주당은 '증세'로 이슈 주도권을 잡으려고 시도하다가 여러번 쓴맛을 봤었다.
새누리당이 소득세법 개정안인 버핏세를 한참 망설이다 지난해 12월31일 자정을 넘겨 극적으로 통과시키는 극적인 드라마를 보여줬다면 민주당은 증세를 얘기하면서도 몇 번의 전략 수정으로 이미지만 나빠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처음 민주당이 얘기했던 것은 세목 신설 없는 보편적 복지였다.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을 인식한 탓이었다. 하지만 증세없는 복지가 허구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부자증세'로 말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가 낮춰놓은 조세부담률을 참여정부 수준까지 회복시키겠다고 주장했고, 이는 증세가 아니라 '복원'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문 후보는 "그동안 민주당에서 증세라는 표현을 피한 것은 국민들이 이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라며 "이명박 정권 들어 조세부담률이 2%p 떨어졌는데 이를 참여정부 수준으로 되돌리겠다는 것도 솔직히 증세"라는 진실고백을 했다.
이에 일부에서는 웬만한 복지 공약을 가지고 차별화를 꾀하기 어려운 문 후보가 '증세'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사실 내용상으로는 전과 달라진 것은 없지만 '증세'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공약 실현성이 있는 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과 동시에 증세에 부정적인 사람들에 대해선 '조세부담률 복원'일 뿐이라는 말로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이것이 그다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이지은 간사는 "지금 후보들이 증세를 안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문 후보가 내용도 변하지 않은 것을 두고 증세를 얘기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차별화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