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김치는 한국의 저렴한 건강보험’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김치의 효능을 격찬한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김치를 먹어 뚱뚱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비타민 A, B, C를 섭취할 수 있어서 무병장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험이란 단어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을 지켜주는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때로는 ‘보험’이 추악한 거래를 나타내는 말로 쓰일 때가 있어 보험업계에 약 30년간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선거 등 어떤 이벤트를 앞두고 행여나 겪게 될 불이익에 대비해서 뇌물을 건네는 것을 ‘보험에 든다’고 표현하고 있다.
김옥두 전 의원의 부인은 김 의원이 야당생활을 할 때 보험설계사로 활동하면서 살림을 꾸렸단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유력자들이 그 부인에게 보험을 가입하여 새로운 권력에 ‘보험’을 들었다.
당시 이건희 홍나희 부부, 김태정 법무장관 부인, 강인덕 통일원 장관, 김정길 청와대 정무수석, 임창렬 경기지사, 천용택 국가정보원장, 이무영 서울경찰청장 등이 앞다퉈 그 부인을 통해 보험에 가입하였다.
이런 경우는 묘하게도 진짜 보험에 가입하여 ‘보험’을 드는 케이스다.
선거철 마다 기업들은 ‘보험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요즘은 박근혜 당선인이 “나에게는 빚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차떼기’로 선거자금을 제공하면서 차기정권에 보험을 들었다는 것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닌 세상이다. 물론 당선 가능성에 따라 후보자나 정당별로 ‘보험료’로 내는 돈의 액수는 달랐다.
돈으로 ‘보험’을 드는 방법 이외에도 권력과 가까운 인사를 기업에서 중용함으로써 ‘보험’에 드는 방법도 유행했다. 일부 기업과 공공기관의 특정지역 출신들이 새 정부의 등장과 함께 득세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런 자발적인 ‘보험’ 가입 덕분이었다.
이제는 보험이란 단어가 바르게만 쓰이는 세상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음침한 거래를 나타내는 말로 쓰여지는 것도 이젠 끝낼 때가 됐다. 가족사랑이나 위험에 대비하는 것을 나타내는 원래의 의미로 되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약력] 삼성생명 부장, AIG생명 부장, GE캐피탈코리아 이사, 에이스(뉴욕)생명 전무, 조세일보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