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시대를 표방하는 박근혜 정부가 5년의 임기로 첫 출발을 앞두고 있다. 경제발전 단계와 민주화 과정을 거쳐 본격적으로 복지국가 시대에 진입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어젠다를 실현하기 위해 야심하게 출발하는 새 정부에 거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 크다.
그간 어느 정부도 세계경제 환경과 고용여건 등 대내외적인 경제환경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지만 새로 출범하는 박근혜정부가 이전의 정부보다 더 심각하게 직면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국가재정 문제라 할 수 있다.
◇ 새 정부의 성공은 재정안정이 좌우
우리나라의 재정여건은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본격적인 선진국형 저성장으로 갈수록 어려워지고있다.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 연간 100조원을 훌쩍 넘는 복지예산을 제대로 감당하기 벅찬데다 5세 이하 무상보육, 저소득층 반값등록금 및 사회보험료 지원 등 당선인의 복지공약을 이행하는데만 5년간 135조이 필요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하여 한국경제연구원은 5년간 270조원, 기획재정부도 268조원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계하는 등 전문가들은 복지공약에 필요한 예산은 거의 2~3배가 더 들어갈 것으로 추정하고있다.
이외에도 도로, 철도 등 105개 지역공약의 이행을 위해서 추가로 150조원 상당의 재원이 더 필요하여 결국 대선 공약을 다 이행하려면 5년간 총 400조원이 필요하다고 보고있다.
올해 국가 전체 예산규모는 342조이고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연간 3%이하의 저성장 국면에 놓인 우리나라가 이런 엄청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어려운 재정여건에서 작년에 무려 3조원의 세수부족사태가 벌어진 것은 매우 중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1997년 IMF 직후 1~2천억 규모로 약간의 세수결손이 있었던 것을 빼고는 수 조원대의 세수결손은 우리 재정사에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는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법인세율 인하 등 이명박정부의 감세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제경쟁력을 확보한다고 법인세율을 인하하여 작년에만 10조원 등 5년간 총 27조원을 깎아주었고 연구개발세액공제로 35조를 감면해주었다.
이들 감세의 대부분은 1%도 않되는 대기업들이 독차지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재정이 크게 악화되었지만 계속적인 팽창예산에 기초한 과도한 세수목표는 아무리 세무행정을 강화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로써 우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세수결손사태가 빚어졌고 엄청난 감세에도 불구하고 투자와 고용 등 낙수효과는 거의 나타나지않았다. 조세제도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국가재정이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 세무조사 강화와 지하경제 양성화는 근본대책 안돼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복지재정을 확보하여야 하는 박근혜 새정부가 재정악화의 주범인 법인세나 소득세의 세율이나 비과세·감면 등 조세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하지않고 오로지 세무조사 강화와 지하경제 양성화와 같은 세무행정적인 세입대책과 허리띠를 졸라매는 세출절감으로 직면한 재정문제를 우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걱정이다.
세무조사의 강화와 지하경제 양성화는 분명 필요한 것이고 반드시 이뤄야할 과제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해 수 백조원에 달하는 추가적인 재정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먼저 세무조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살펴보자.
최근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전자세금계산서, 정규적격증빙제도는 물론 성실신고확인제 등 과세인프라의 비약적인 확충으로 이제 세무행정은 납세자의 담세력을 거의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정도로 경이로워졌고 조세탈루가 반복해 발생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무조사가 거의 불필요한 시대에 돌입하였다.
지난 5년간 매년 조세탈루혐의가 많은 고소득자영업자들을 상대로 심도있는 심층조사를 계속했고 유류도매상 등에 대한 자료상조사를 쉬지않고 해왔지만, 세무조사로 징수하는 세금은 통틀어도 한 해에 5조원에 불과한 사실은 세무조사로 세수를 추가로 더 늘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다음으로, GDP의 24%인 300조로 평가되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여 세수를 늘리는 것을 살펴보자.
불법자금이나 사행사업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으로 과거와 같이 사회전반적인 무자료거래 등 탈세와 관련하여 소득탈루로 세금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GDP의 5%인 60조(조세연구원)에 불과하여 재원확보책으로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보유한 고액현금거래(CTR)나 의심정황거래(STR) 자료를 과세에 전면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국세청은 연간 4조~6조원의 추가 세수만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더욱 걱정인 것은 추가적인 세원을 확보하기 위해 세무조사 강화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하여 저인망 세무행정을 펼치다 보면 담세력이 충분하고 세무조사나 지하경제와 거의 무관한 대기업과 자산가는 별로 영향을 받지않고 대부분 서민과 중산층, 그리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게 부담이 집중될 수 있고 밑바닥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세무조사의 강화와 지하경제의 양성화로만 엄청난 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고 낙관하여 엄청난 규모의 추가재정을 집행하는 경우 매년 수십조의 세수결손과 적자재정이 반복될 수 있다.
더구나 추가적인 세원을 확보하기 위해 형평성에 어긋난 조세제도를 개선하면 담세력이 충분한 대기업과 자본가를 중심으로 과세형평을 기할 수 있지만, 세무조사 강화 등 세무행정에 매달리는 경우 그 저인망 행정은 대부분 서민과 중산층, 그리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집중될 수 밖에 없기에 걱정된다.
[약력] : 세무사·경영학박사, 가천대 겸임교수, 한국세무사회 연구이사, 한국조세연구포럼 부회장, 중부지방국세청 납세자권익존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