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대통령(?)…시작 전부터 만난 현실의 '암초'

첫 총리인선 실패에 따른 인사지연

지난 대선기간 20년 가까운 의정활동을 강조하면서 이른바 '준비된 대통령'을 표방했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 출범 1달, 대통령 취임식을 불과 20일 앞둔 현재 곳곳에서 발생되는 잡음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인사문제부터 시작해 대선기간 공약으로 제시한 정책들의 재원조달 현실성 문제에 부딪혀 있고, 본격적인 새 정부 조직개편을 앞두고는 현 정부와 갈등까지 빚어지고 있다.

더구나 재작년부터 이어지는 고질적인 경기침체 상황과 최근의 북한 3차 핵실험 시도에 따른 북핵 리스크 등 대외적 '악재(惡材)'까지 겹친 상황이다.

□ 첫 단추 잘못 채운 인사…출범 20일 전까지 '장고(長考)' = 지난달 24일 박 당선인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깜짝 총리인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사상 초유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새 정부 첫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이다.

1994~2000년 2대 헌법재판소장을 역임, 사법부 최고지위까지 올랐던 40년 관록의 법조계 대부(代父)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새 정부 첫 총리로 지명되자 세간의 관심은 집중됐다.

그동안 그가 걸어온 법과 원칙에 대한 소신과 장애를 딛고 우뚝 선 인생스토리는 첫 인사지명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의혹, 자녀 병역문제 등 예상치 못한 김 후보자 주변의 신상문제가 불거지면서 총리지명 5일 만에 자진사퇴하는 사상 소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박 당선인이 구상했던 장관급 국무위원 인사는 물론 청와대 비서실장 등 새 정부 핵심인사가 당선인 취임식을 불과 20일 앞둔 현재까지도 단 한명도 결정되지 못하고 있다.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에 빗댄다면 당선인의 새 정부 정국구상이 아직까지 한 걸음도 보폭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김 후보자의 낙마로 한층 높아진 도덕성 검증의 벽 앞에, 후속 지명인사들의 손사래도 이어지면서 박 당선인의 조각 작업 '이중고(二重苦)'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당선인이 어떤 참신한 인물을 내세워 침체된 분위기를 수습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박 당선인의 인사작업을 측면 지원할 청와대 비서실장을 우선적으로 인선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원칙을 중시하는 박 당선인이 국무총리를 우선 지명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 조용한 인수위 행보…정부조직개편 '반발심리' 키웠다? =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출범시작부터 낮은 자세를 강조했다. 이전 정권 인수과정처럼 인수위원들이 정부 인사들을 비판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점령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사실상 대선결과가 집권여당의 승리로 귀결됐기 때문에 정권교체에 따른 정책의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택한 것.

이에 따라 인수위는 정부 파견인사를 여느 때보다 줄이고 인사청탁 등 문제점이 노출된 바 있는 외부 전문위원제도 폐지하는 등 실무형 조직구성을 통해 조용한 행보를 이어갔다.

다만, 설익은 정책발표에 따른 국민혼선을 우려한 과도한 보안강조는 '불통(不通)' 인수위라는 오명을 가져다줬고 이로 인해 의도하지 않게 비밀스런 조직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런 문제점은 차기 정부의 핵심 골격인 정부조직개편안을 마련하고 현재 국회에서 동의를 얻어가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조직개편은 인수위는 물론 정부 각 부처 업무보고 과정에서 각 부처 관계자들과 충분히 논의되어야 할 문제임에도 17부3처17청을 골자로 하는 정부 조직개편안은 공직사회에 내부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게 하는 빌미를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정보통신과 과학기술 분야를 두루 관장할 매머드급 부처로 신설될 미래창조과학부의 과도한 권한집중 문제를 비롯해, 외교통상부 통상기능의 산업통상자원부 이관, 일부부처 명칭변경(농림수산식품부→농림축산부, 행정안전부→안전행정부) 등 세부조율 과정에서 이견이 노출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에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통상기능 이관문제에 대해 "헌법과 정부조직법 근간을 흔들 소지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발했고, 이에 대해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이 즉각 "궤변이자 부처이기주의"라고 질타하고 나서는 등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다.

이와 함께 새 정부 각종 복지확대 공약이행을 위한 재원확보 방안도 경고음이 울린 상황이다.

당초 지난달 업무보고에서 대규모 세출구조조정 특명을 받은 기획재정부는 아직까지도 인수위 측에 제대로 보고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말까지 제출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공약이행에 따른 소요재원이 국가가 운용 가능한 현실적인 예산규모 틀을 한참 벗어나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계획을 내고 싶어도 못내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각 부처가 마련한 세출조정계획 자체가 당초 기대했던 규모를 한창 미치지 못해, 당선인이 국정과제토론회를 통해 공개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박 당선인이 직접 나서 공직사회의 복지부동, 부처이기주의 행태를 꼬집고 나섰지만 여전히 공직사회의 뚜렷한 변화기류는 없다. 당장 취임식 이후에야 그나마 령(令) 서지 않겠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문제는 사실상 박 당선인 스스로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당선인이 인수위 출범부터 인수위원들과 새 정부 내각과의 연결고리가 없다는 점을 부각시켜 공직사회의 무사안일 행태를 되레 키웠다는 것이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총리 지명 이후 이런 흐름이 조금 바뀔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이번  인수위와 차기정부의 연속성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관가 안팎의 분위기다.

□ '北核 리스크' 등 대외적 악재까지 = 최근 박 당선인은 미리 계획됐던 국정과제토론회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대신 인수위 국방외교통일분과 위원들의 긴급 현안보고를 받았다. 최근 북한 3차 핵실험 예고에 따른 대응책 마련을 위해서였다.

국내 경기침체 해결, 경제민주화 등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될 난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더해져 박 당선인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박 당선인은 연일 북한 추가 핵실험 중단을 촉구하면서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해외인사 접견과정에서도 필요할 경우 국제적 협조를 통해 북한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당선인은 대북 문제에 대해서는 여타 정책결정과정에서 보였던 다소 지지부진한 행보와는 확연히 다른 신속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만 실질적인 대응책 수립을 위해 대북 정보가 상당히 집결된 현 정부의 군, 정보당국 관계자들의 협조를 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지만 현 정부 대북 정책결정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당초 공약으로 제시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우선 북한 스스로의 평화에 대한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박 당선인의 판단이다.

박 당선인은 지난 4일 미국에 조만간 파견될 한미정책협의단 접견 과정에서 "신뢰프로세스는 도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열어놓는다는 차원"이라며 "특히 북한 핵실험은 국제사회 힘 합쳐서 단호히 대처하고 그래도 강행한다면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말했다.

본격 취임 전부터 대내외적 악재가 겹친 박 당선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이를 위해 국민들에게 알릴 것은 미리 알려 이해를 구하고 절충점을 찾아야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인수위가 전체적으로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게 활동했지만 너무 보안을 강조하다보니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