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1급 출신…경제사령탑 '중량감' 다소 미흡
경제민주화 정책 후퇴 가능성…경기부양책 추진할 듯
지난 17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새 정부 3차인선 명단을 전격 발표하면서 17개 부처 장관 내정자 면면이 모두 공개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미래창조과학부, 해양수산부 등 정부조직법 개정이 필요한 부처까지 정치권 협상 타결 전에 일괄 발표한 것은 새 정부의 원활한 국정운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에서 부총리급으로 재격상되는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인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의 발탁배경에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정부 장관이 새 정부의 경제사령탑으로 예산, 조세, 금융, 거시경제 등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향후 국가경제 흐름이 좌우될 만큼 중요한 위치라는 측면에서 그동안 부총리 후보군으로 단 한 차례도 거론되지 않았던 현 원장의 선택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 14년 만에 친정복귀…1급→부총리 '수직상승' = 현 원장은 행정고시 14회로, 과거 기획예산처(EPB)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주로 예산, 기획부서에서 근무해 오다가 재무부와 융합한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에서도 쟁쟁한 14회 동기들 사이에서 부처 내 핵심요직인 경제정책국장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당시 장관과의 마찰, IMF 구제금융 위기 등에 따른 책임론으로 국고국장직으로 자리를 옮긴 뒤 2개월 후인 2000년 6월 외곽조직인 세무대학장(1급)으로 떠나면서 재정부 활동을 사실상 끝내게 된다.
이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장 등을 역임하면서 재정부와 연을 이어가다가 2009년 3월부터 KDI 원장을 맡으면서 조력자 역할을 지속했다. 현 원장은 작년 KDI 원장직 재임에 성공했다. 개원 4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현 내정자의 발표는 관가 내부에서도 조금 의아하다는 평이 나온다.
그동안 재정부 장관은 주로 정통관료 출신의 경우 차관급 이상을 지낸 인물이거나, 관가에서 일찍 발을 뺐다면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정무감각을 갖춘 인물 위주로 인선됐기 때문이다.
경제부총리 발표 이전에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김광림, 류성걸 의원 등 행시 관료출신 정치인들이 주로 하마평에 오르내렸던 이유도 바로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장·차관 경력이 있거나 중진급 의원들이 포진된 정부 각 부처를 총괄할 수 있는 무게감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향후 청와대 경제수석 역할에 무게감이 더해질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 내정자는 경제부총리라는 위치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각 부처 정책조율 부분에 대해선 일면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지난 1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전 세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막중한 책무를 맡게 돼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통해서 중산층을 복원 하겠다"고 경제부총리 지명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정부조직개편으로 경제부총리로서 부처를 조정해야 하는 업무까지 더해진 상황"이라며 "여러 부처의 국무위원들과 함께 고민·협의하고, 나아가 국민과의 설득 및 이해과정을 통해 조정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과도한 '예스맨' 행보 등 '극복과제' = 박 당선인이 현 내정자를 경제사령탑으로 전격 발탁한 것에 대해 재정부 안팎에서는 향후 재정부 핵심라인이 재무부 출신에서 예산처 출신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는 현재 일부 고위직급에 한정된 시각일 뿐, 그동안 양 기관 인사들은 재정경제부와 기획재정부를 거치면서 상당히 융합된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인사문제 등이 불거질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대체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현 내정자의 지나치게 친정부적인 성향과 낮은 무게감은 향후 국정운영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으로 꼽히고 있다.
일례로 과거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안 처리가 한창 난항을 겪고 있을 무렵, KDI 내부 보고서에 FTA에 따른 경제성장률 제고효과를 더 부각시키라는 주문을 해 이에 반발한 내부 연구진이 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또한 KDI 업무 자체가 국책연구기관으로 정권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와 보고서를 생산하는 곳이기 때문에, 확고한 색채가 있기보다는 사안별로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이 있어서 그동안의 역할 자체가 소극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따라 현 내정자가 새 정부에서 향후 경제상황에 맞게 책임부총리로써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박 당선인의 의중을 신속히 파악해서 이를 경제부처별 업무조율 등에 적극 반영하는 '예스맨' 역할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주춤하게 될 가능성도 극복해야 될 과제다.
실제로 부동산 정책을 전담하게 될 서승환 국토부 장관 내정자를 비롯해 앞서 발표된 국무위원 상당수가 경제민주화 정책보다는 시장 활성화 및 규제완화에 초점을 맞춘 인사라는 평가도 나온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당초 약속했던 복지정책보다는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우선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현 내정자는 지난 기자간담회에서 추경 등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에 대해 좀 더 검토해 보고 결정하겠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고, OECD에서 권고한 증세 우선순위(필요시 부가세부터 인상)에 대해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지만 나중에 고려해야 될 부분이라고 답변했다.
개인적인 문제도 넘어야 될 산이다. 그는 현재 자녀에게 부담부 증여(자산 증여시 채무를 포함시켜 증여세 과표를 낮추는 것)를 통한 증여세 회피 문제, 과거 저축은행 뱅크런 사태 전에 예금을 미리 뺀 의혹 등을 받고 있다.
그는 이와 관련해 곧바로 해명자료를 내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향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잡음'이 발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재정부 인사들, 친정인사 복귀에 '반색' = 선배의 화려한 복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재정부 직원들은 이번 인선에 환영을 뜻을 나타내고 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 원장과 일을 직접적으로 해본 적은 없지만 일을 잘하신다는 말은 예전부터 많이 들었다"며 "재정부에 오래 근무했고, KDI 원장을 지낸 만큼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부처 업무를 총괄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내정자와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다는 한 국장은 "현 원장은 평소에도 모든 업무에 학구적이고 분석적인 자세로 임한다"며 "부하 직원들의 의견도 존중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환영을 뜻을 나타냈다.
다만, 그가 공직생활 과정에서 주로 기획, 예산파트를 중심으로 활약해 세제, 금융 분야 전문성은 좀 더 보강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새 정부에서 복지재원 확충을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 감면 정비 등 각종 세제개혁 업무가 중요시 되는 만큼, 이를 직접 챙기고 진두지휘해야 하는 경제부총리로써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 원장이 퇴직 직전 세무대학장을 역임했고, 관세청 FTA 추진위원장도 맡아 세제파트 경륜도 있는 만큼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상당히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