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와 증시 침체로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돈을 맡겨 재산을 불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
최근 은행권에서 다시 판매하기 시작한 재형저축을 통해 어느 정도 재산 형성의 숨통이 트일 것도 같지만, 재형저축이 최초 도입된 70년대와 같이 고금리가 형성되지 않아 스스로 노후를 대비하기가 버겁다.
정부가 비과세 저축이나 소득공제를 통해 저소득층의 재산 형성을 지원해도, 뛰어오르는 물가 인상률을 감안하면 재테크는 제자리걸음을 걷는 결과로 돌아온다.
정부는 지난해 세법 개정을 통해 10년 이상 투자한 공모펀드(간접투자) 중 가입금 일부를 소득공제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세원 부족 등을 이유로 정치권 일부에서 반대하며 중간에 무산됐다.
현재 시장에는 연금 저축을 제외하면 마땅히 가입할 만한 소득공제 금융 상품이 거의 없다.
특히 장기주택마련저축 가입 시의 소득공제가 2009년 종료되면서 저소득층 근로자의 소득공제 금융 상품은 없는 상황. 이달 초 새로 출시된 재형저축 역시 이자 소득세에 대한 비과세만 될 뿐 소득공제 혜택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예·적금처럼 보편화돼 있는 장기 펀드에 대해 소득공제를 부여하고, 저소득층 근로자의 세테크 기회를 열어 줘야 한다는 주장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세제 혜택 금융투자 상품의 다양성을 보장해 다수의 서민·중산층이 다소의 위험을 부담하더라도 고수익을 통해 재산 형성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면, 고령화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줄일 뿐더러 침체된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펀드 계좌 수 '1억5000만개', 국민 1명당 3개 가입 = 지난해 국내 펀드에 유입된 돈은 1690조3140억원, 계좌 수는 1억5328만9000개다. 비(非)경제활동인구를 포함할 경우 전 국민이 1인당 3개 이상의 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펀드 투자가 인기를 모은 시기는 지난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 전 세계 증시가 활황을 이룰 때, 투자위험이 비교적 적으면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펀드 가입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보편화됐다.
펀드 투자는 주식 투자와 비교해 직접 주식을 선택해야 하는 위험이 없다. 자산운용사가 운용을 맡지만 만일 증시가 폭락하면 원금 보장이 안 돼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의 경우 아직 가격이 낮게 평가돼 있는 만큼 장기간 투자하면 정기예금보다 수익률이 높아 주로 젊은 직장인들의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정부가 장기 펀드 소득공제를 추진한 것은 이처럼 펀드 투자가 직장인 사이에서 필수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 소득공제 금융 상품 가뭄, 저소득층 근로자 갈 곳 없어 =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금융 상품 중 저소득층 근로자들이 재테크 수단으로 이용할 만한 것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정부에 의해 추진됐던 장기 펀드 소득공제 법안이 무산된 것에 대한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는 상황.
지난해 정부에 의해 추진된 법안에 따르면 연봉 5000만원 이하의 회사원, 연 소득 3500만원 이하의 사업자 등이 10년 동안 펀드에 투자한 경우 불입액의 40%가 과세표준에서 제외된다. 1인당 불입액 한도는 600만원까지다.
만일 연봉 5000만원의 A씨가 매달 50만원씩 10년 동안 펀드에 투자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세제 혜택은 얼마일까.
부양가족, 기타 공제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그는 1년에 39만6000원을 연말정산에서 더 돌려받을 수 있다.
연봉 인상이 없다고 가정해도 10년 동안 펀드를 해지하지 않으면 약 400만원을 더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공공 기관에 근무하는 A씨는 "현재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데 만일 40%까지 소득공제를 해준다면 더 투자할 것이다.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최대한도까지 투자할 것 같다. 연봉 조건만 된다면 누가 가입을 안 하겠느냐"고 했다.
□ 연봉 기준 낮아, 조세 형평성 문제도 제기 = 하지만 연봉 기준이 지나치게 낮아 세제 혜택을 입을 수 있는 대상자가 적다는 것은 문제로 꼽힌다. 침체된 증시에 활력을 넣고, 저소득층의 재산 형성 지원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O씨는 "연봉이 5000만원을 가까스로 넘지만 대출금 상환에 결혼 자금 준비까지 빠듯해 저소득층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펀드 소득공제 혜택을 연봉 5000만원으로 정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다른 금융 상품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펀드 투자가 기본적으로 일정 소득 이상을 받는 경우 가능하다는 점에서, 여기에 소득공제를 제공하는 것은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기 펀드에 대한 소득공제가 저소득층 근로자를 위한 재산 형성 창구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합리적 기준을 설정해 이 같은 이질감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선행돼야 하고, 그래야만 의도한 정책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