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야 정치권이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두고 타협점을 전혀 찾지 못하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식물정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정부 조직법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함에 따라 새 정부가 신설을 추진하는 미래창조과학부, 해양수산부 등은 물론 주요 부처의 장·차관급 인사가 늦어져, 국정운영에 상당한 공백이 발생한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어진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계속되며 올해도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지만, 경제정책을 총괄할 기획재정부의 수장 자리는 사실상 공석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오석 KDI원장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현 내정자의 인사청문회는 오는 13일로 예정돼 아직 시작조차 못했다.
새 정부가 출범부터 각부처 장·차관 임명에 어려움을 겪자, 뜻밖의 피해자도 나타나는 실정이다.
MB정권에서 장관직을 맡았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도 불구하고 장관직에서 내려오지도, 계속 장관직을 수행하기도 애매한 상황에 빠져있다.
재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장관은 현재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건물로 정상 출근하고 있고, 서울에 일정이 잡힌 날에는 명동 은행회관에 마련된 집무실로 출근한다.
하지만 박 장관은 당장 이번 달부터 예전에 재직했던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복직할 예정이었다. 3월4일 개강 첫날부터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줘야 했지만, 현 내정자의 인사청문회 일정이 밀리며 여전히 장관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강단 복귀 일정이 꼬였다.
지난 4일에도 서울시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제47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는 등 성균관대 정문에는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다.
재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장관은 현재 성대 강의를 모두 휴강한 상태며, 장관실로 출근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수장의 자리를 지키며 장관직을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편 재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장관의 경우 교수로서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강의에 나서도 되지만, 다소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공무원들이 대학 등 외부기관에 강의를 나가기 위해서는 상사로부터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박 장관도 외부 강의를 위해서는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박재완 교수'가 성균관대 행정학과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싸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박재완 장관이 현오석 내정자의 인사청문회가 시작되지도 않아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장관업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장관직에서 물러나 대학 강단에 서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실질적으로 기획재정부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신제윤 1차관의 경우도 박 장관이 처한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신 차관의 경우 최근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신임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된 상태지만, 경제정책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1차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당분간 재정부 1차관과 금융위원장 내정자라는 2개의 임무를 모두 수행하겠다며 '투잡'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신 차관은 오는 18일로 예정된 금융위원장 인사청문회를 제대로 준비할 시간도 없이, 재정부 1차관으로서 각종 업무를 수행 중이다.
지난 8일에도 새 정부의 물가관계부처회의를 주재했고, 11일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초로 개최되는 국무회의에 박재완 장관을 대신해 참석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의 인사청문회가 오는 13일 실시돼 무사히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될 경우 이번 주말이면 박재완 장관의 이임식과 현 부총리의 취임식이 거행될 것"이라며 "현 내정자가 취임한 이후에는 재정부 행사도 차질 없이 치러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