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수출효과 '톡톡'·오렌지 수입 급증 = 한·미 FTA 발효 이후, 대미 수출입 실적을 보면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는 가운데 오렌지와 체리 등의 과일류 수입이 급증했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대미 수출액은 538억달러, 수입액은 433억달러로 147억달러의 무역수지를 기록, 흑자를 봤다. 이는 전년 대비 44%가 증가한 수치다.
한·미 FTA의 효과를 톡톡히 본 품목은 '자동차'다. 한·미 FTA 발효 이후, 대미 자동차 수출액(부품 포함)은 151억달러로 같은 기간 전년 대비 무려 19%가 증가했다.
이 중에서도 자동차 부품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 지난해 3월부터 올 1월까지의 수출액은 52억달러로 전년 대비 12%가 늘어났다. 자동차 수출액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규모다.
이는 단계적으로 철폐되는 완성차에 대한 관세와 달리 자동차 부품은 한·미 FTA가 발효되자마자 무관세 혜택을 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철강제품과 고무제품도 전년 대비 수출액이 늘었다. 철강제품은 지난해 3월부터 올 1월까지 25억1483만달러의 수출액을 기록, 전년 대비 15% 증가했으며 고무제품은 한·미 FTA 발효 이후 18억7303만달러를 수출해 전년 대비 5% 수출액이 늘어났다.
반면 미국산 오렌지와 체리 등의 수입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지난해 3월 15일부터 연말까지 미국산 오렌지 수입액은 1억4800만달러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으며 체리의 수입액은 8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78%가 늘어났다.
이는 3월부터 8월까지 적용된 계절관세 때문으로 이 기간, 오렌지는 50%였던 관세가 30%까지 낮아졌다. 기존 24%였던 체리의 관세는 한·미 FTA 발효 이후 완전 폐지됐다.
□ 심각한 피해 없어…무역수지 '흑자 행진' = 한·미 FTA가 한창 논란이 됐을 당시,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농축산물 수입 급증에 따른 국내 농가의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었다.
정부조차 한·미 FTA가 발효되면 미국산 농산물 수입액은 연 4억달러 정도 늘어나고 국내 농업 생산액은 8150억원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국내 농가의 피해가 심각한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는 커져갔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는 '기우(杞憂)'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농산물 전체 수입액은 38억달러로 전년 대비 17% 감소했다.
미국산 오렌지와 체리 등의 수입이 크게 늘었지만 미국의 가뭄으로 인해 미국산 옥수수 수입이 크게 줄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한우 가격의 폭락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준 것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가장 많은 피해가 우려됐던 농축산 분야가 오히려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
자동자 부품과 철강제품, 고무제품 등의 수출이 대폭 늘어난 것까지 감안하면 한·미 FTA로 인해 '실'보다는 '득'이 더 많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 관세청은 지난해 3월15일부터 연말까지의 대미 수출을 보면 FTA 비혜택 품목의 수출이 전년 대비 2.8% 감소했지만 FTA 혜택 품목은 8.1% 증가, 한·미 FTA가 대미 수출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 감귤·딸기농가는 '죽을 맛'…소비자 혜택은 과일 뿐(?) = 한·미 FTA가 무역수지 흑자 행진이라는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 농산물 수입액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감소했지만 오렌지와 체리 등의 수입 급증은 감귤과 딸기, 포도, 자두 등의 국내 과일의 소비를 줄어들게 만들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25%가 가격이 싼 오렌지와 체리 구매를 늘리면서 국내 과일의 소비를 줄였다고 답했다.
미국산 오렌지가 감귤과 딸기 등 제철과일 수요를 대체한 것이다. 한·미 FTA 발효 1년을 맞는 15일부터는 오렌지의 계절관세가 30%에서 25%로 인하돼 가격은 더욱 내려가 감귤 소비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서울농수산식품공사가 지난달 고시한 감귤 가격을 보면 10kg 도매가격은 2만2658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떨어졌다. 딸기(2kg)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5.2% 하락했다.
소비자로서는 이득일 수 있지만 국내 감귤 등 생산 농가는 직격탄을 맞은 셈이 됐다.
그렇다고 모든 관세 인하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다. 과일을 제외하면 제조품의 가격 인하 효과는 미비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예로 한국소비자연맹이 최근 발표한 수입 콘택트렌즈의 가격을 살펴보면 관세가 인하됐음에도 최종 소비자 가격에는 인하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산 제품의 관세는 8%에서 5.3%로 2.7%p 인하됐지만 1회용 콘택트렌즈인 소프렌즈 데일리(바슈롬)은 오히려 2012년 개당 가격이 1192원으로 전년 대비 19.7%이나 인상됐다.
정부 관계자는 "관세 인하 혜택을 유통구조에서 다 잡아먹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소비자가 FTA로 인한 효과를 보게 하려면 제조업계의 가격 책정 합리화와 유통구조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적극 나서서 이런 부분을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