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총리의 사과가 허탈한 이유
정홍원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연 이틀째 국정에 대해 사과했다.
정 총리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박근혜 정부의 인사 문제에 대한 박지원 민주통합당 의원의 사과 요구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정 총리는 "박근혜정부는 총 13명이 낙마한 사상 최대 인사 실패를 보였다.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도 않고 국민이 반대하는 인사까지 임명했다"는 박 의원의 질책에 이같이 밝혔다.
인사 배분 실패에 대해서도 "인사원칙을 따르다 보니 지역분배에 다소 미흡했다"면서 "아쉬운 점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들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거듭 사과했다.
책임총리로서 인사 문제에 얼마나 권한을 행사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인사에 대해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면서도 "제청을 했고 대화가 있었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전날인 24일에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추경과 관련해 논란 끝에 사과를 내놓은 바 있다.
정 총리는 여야 의원들이 추경예산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자 "지난해 예산안 편성 및 확정 과정에서 국회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미흡한 경제예측과 세입전망으로 국회에 제출한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입결손, 서민경제와 민생안정 어려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양해 바란다"면서 "이번 추경으로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위해 조치를 취하고 이 과정에서도 국회와 협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총리가 이틀간 두 번이나 사과를 했음에도 국민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모습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는 새 정부의 내각 중 유일하게 정부 출범을 함께한 정 총리에게서 박 대통령이 강조했던 책임 총리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생각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과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총리에게 실질적인 힘을 실어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들은 이를 책임총리제로 받아들이고 그동안 반복돼온 '대독(代讀)총리'나 '방패총리'와는 달리 인사와 정책에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책임질 부분에 명확하게 책임을 지는 총리의 모습을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 총리는 지난 2월 총리 지명 직후 책임 총리의 의미에 대해 "대통령을 정확하게 보필하는 것"이라고 밝혀 이같은 국민적 인식과는 거리감이 있음을 드러냈다.
인사청문회에서는 각료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질적으로 박 대통령의 수많은 인사 실패는 하향식 인선 과정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정 총리는 "대화가 있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실질적으로 제청권을 얼마나 행사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날 정 총리의 사과가 다소 허탈하게 느껴진 것은 자신이 결정하고 책임질 수 없는 일에 누군가를 대신해 사과를 하는 '방패 총리'로서의 그림자가 겹쳐졌기 때문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