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을 앞세워 전 정부에서 금융권을 호령했던 4대 천황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29일 어윤대 KB금융 회장(사진)은 오후 3시 KB금융지주 명동 본점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연임을 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거취에 대해 입장을 표명했다.
어 회장은 "KB금융지주에서 다음달에 차기 회장 추대위를 가동할 것 같은데 그 전에 저의 입장을 밝히는 게 맞을 것 같다"며 "사외이사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임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그는 연임 포기 의사를 늦게 밝힌데 대해 "KB금융은 외국인 지분이 65%에 달하고 산은이나 우리금융처럼 정부의 지분이 하나도 없어 연임의사를 밝히는데 대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며 "가만히 있으면 그만인데 다른 오해가 있는 것 같고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KB금융에 취임한 이후 3년 동안 잘못한 것도 있지만 잘한 것도 있다"며 자신의 공로로 KB라는 브랜드 파워가 상승한 것과 금융인재를 키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여한 부분을 꼽았다.
특히 그는 KB금융의 독립성이 이전보다 높아졌다고 자부했다.
어 회장은 "그동안 일부 관행에 의하면 은행의 인사나 대출관계에 있어 직간접적으로 외부에서 부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나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에서 부탁한 일도 없고 인사의 독립성을 유지했다는게 크게 보면 업적인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는 민병덕 은행장의 이름을 거론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어 회장은 "민병덕 행장이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은행이 공정성 있는 경영을 해 왔기 때문에 직원 여러분들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달라진 모습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차기 회장에 대해서는 "사외이사들이 결정할 일이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그는 "영란은행은 한국보다 감독권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란은행에서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를 하고 있는 마크 카니라는 분을 모시고 가지 않았냐"며 "심지어는 외국인을 모셔갈 정도로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데 행내 인재 여부 보다는 금융을 이끌어 갈 리더십을 갖고 있냐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어 회장이 이날 연임 포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며 4대 천황의 시대는 종료를 앞두게 됐다.
MB정권 때 4대 천황으로 불렸던 어윤대(KB), 김승유(하나), 강만수(산은), 이팔성(우리) 회장은 막강한 권력으로 금융권을 호령했다.
이들 중 김승유 전 하나금융회장은 외환은행 인수가 성사된 직후인 지난해 초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 났으며, 지난 3월에는 강만수 KDB산은지주 회장이 사임했다.
또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 4월 14일 갑작스럽게 퇴임 의사 밝혔으며, 현재 우리금융은 차기 회장을 뽑기 위한 회추위를 가동중에 있다.
마지막으로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연임을 포기 의사를 밝히며 이른바 4대 천황의 시대는 최종 종료하게 됐다.
이들 4대 천황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금융권의 주목을 받았으나 취임 초 내걸었던 각종 현안들이 잇따라 무산되며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이팔성 회장의 경우 최대 현안으로 꼽았던 우리금융 민영화를 결국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달 14일 사퇴의사를 밝히며 "회장 취임 이후 우리금융 민영화를 위해 정부지분 17%를 불록딜 방식으로 매각했고,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차례에 걸쳐 완전 민영화를 최초로 시도했으나 무산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임기내 우리금융 민영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MB정권 내 최대 경제실세로 불렸던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도 산은 민영화와 IPO(기업공개)를 결국 성사시키지 못하고 임기를 1년여 남겨둔 상태에서 사퇴를 결심해야 했다.
이번에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힌 어윤대 회장도 지난해 우리금융과 ING생명 국내법인의 인수에 실패하며 정권말 권력누수를 제대로 경험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