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회계감사를 맡은 회계사에게 형사처벌이 내려져 회계업계가 경악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1형사부(부장판사 이범균)는 최근 부산상호저축은행의 외부 감사를 소홀히 한 회계사들에게 분식회계를 방관한 혐의 등 미필적 고의가 있다며 무더기로 형사처벌했다.
중앙지방법원은 다인회계법인 공인회계사 소 모씨(48)와 김 모씨(42)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또 부산2저축은행 외부 감사를 담당한 성도회계법인의 김 모씨(40)와 이 모씨(31)도 같은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판결했다.
집행유예 결정으로 신체적 구속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예전엔 생각할 수 없는 강한 처벌인 셈이다.
이번 판결은 1심이어서 고등법원 항소가 이뤄지고 대법원까지 이어질 경우 판결이 바꿔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전례없는 판결이어서 회계사들을 페닉으로 몰고가고 있다.
법원이 대가성 없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부실 감사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는 것은 추후 법원이 고의로 분식회계를 눈감아줬다는 직접 증거를 찾지 못하더라도 정황 증거만으로도 회계사들을 처벌할 수 있는 판례가 되기 때문이다.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은 부실 감사 혐의에 징역형을 선고한 것은 전례가 드물다. 지금까지 분식회계를 묵인했다는 혐의로 회계사가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2001년 대우통신 이후 두 건에 불과하다. 부실감사로 회계법인의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7년 대법원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고합의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 허위 내용을 기재한 혐의로 기소된 공인회계사 홍 모씨에게 미필적 고의를 적용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법원이 부실감사를 한 회계사에 미필적 고의를 적용, 형사처벌 선고해 회계업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 회계업계 미필적 고의 피하려면 스스로 자구책 찾아야
법원이 부실 감사의 대가성이나 고의성이 직접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이례적으로 무거운 형을 선고한 만큼 회계업계도 이제는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해야 할 때가 됐다.
무엇보다 지방법원이 이번에 적용한 미필적 고의는 추후 법적 논란마저도 예상되고 있다.
미필적 고의는 어떤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한 상태에서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광의로 적용하면 회계사가 시간에 쫒겨 기업 회계 내역을 상세하게 살피지 못하는 경우에도 범법행위로 지목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기업이 회계장부를 고의로 거짓 작성하면서 회계사에게 이를 숨겼을 경우에도 회계사가 이를 찾아내지 못하면 미필적 고의에 해당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도 막연하다.
또 회계사가 회계감사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추후 법원에 입증해야 한다면 어떠한 노력과 증거를 갖춰야 할 것인지 회계사들로서는 난감하기만하다.
이번 소송에 휘말린 회계사가 소속된 다인회계법인은 지난해 3월말 현재 공인회계사 21명을 포함해 직원 38명이 근무하고 있고 지난 2011년 4월부터 2012년 3월까지 매출액 34억3400만원과 영업손실 3억4800만원을 기록했다.
또 다른 회계법인인 성도회계법인은 지난해 3월말 현재 공인회계사 96명을 합해 직원 131명이 일하고 있고 지난 2011년 4월부터 2012년 3월까지 매출액 146억8800만원과 영업이익 1억1600만원을 기록한 중견 규모 법인이다.
부산저축은행이 지난 2009년 금융감독원에 신고한 자료에 따르면 이 은행은 외부감사비용으로 다인계법인에 1억2500만원을 지급했다. 다인회계법인은 2009년 8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을 부산저축은행 감사에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저축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다인회계법인이 외부감사에 투입한 시간은 비교적 다른 회계법인에 비해 기간이 짧았고 부실감사의 한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회계법인의 수익성 악화도 기업에 대한 정밀 감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감사 부문은 낮은 수수료 등으로 수익을 남기기 쉽지 않아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없는 형편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회계감사를 받으려하고, 회계법인은 감사 계약 유지를 위해 기업에 불리한 의견을 쉽게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이번 판결이 감사업무를 수행하는 회계사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