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지키는 사명감이 버팀목"…최고의 '국경 파수꾼'을 만나다

"겨울에는 실내에서 장갑을 껴도 추워서 안에 비닐장갑까지 끼는데도 손이 얼어버린다"

한겨울에는 시베리아 벌판, 한여름에는 사우나가 돼 버리는 인천공항우편세관에서 일하고 있는 백재범 관세행정관(사진).

24시간 돌아가는 우편세관에서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해야하는 백 행정관의 일터는 그야말로 전쟁터다.

인천공항 화물청사에 위치한 인천공항우편세관은 쉴새없이 쏟아지는 우편물에 콘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그 우편물에 마약은 없는지 도검과 같은 흉기가 될 만한 물건은 없는지, 과세대상 물건은 없는지 살피기 위해 세관 직원들은 눈을 번뜩인다. 

백 행정관도 마찬가지. 지난 2월 마약류인 메트암페타민을 잡아낸 것을 계기로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 인터뷰를 진행한 날에도 막 들어온 서류의 위조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우편물을 열어보고 있었다.

서류를 한 장씩 다 꺼내 일일이 확인하는 한편, 손바닥의 절반 정도 되는 포장지 안의 물건을 손으로 계속 만져보며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작업을 끝마친 뒤에야 겨우 자리를 옮겨 인터뷰에 응한 백 행정관은 "공직에 있는 사람들 중 사명감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봉급이 적다거나 하는 부분 등은 이런 사명감으로 커버되는 것"이라며 "우리는 작은 것 하나 적발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넓게는 국경을 지킨 것이다. 그래서 마약 등을 적발할 때면 뿌듯함이 굉장히 크다"라고 강조했다.

□ 힘들어 눈감기는 야간근무서 '마약' 잡아내 = 백 행정관은 눈이 절로 감기는 야간근무 때 메트암페타민 30.23g을 잡아내는 등 마약류 5회, 위조문서 4회를 적발했다.

24시간 언제나 통관이 가능한 인천공항답게 우편세관도 밤샘근무를 피할 수 없다. 세관 직원들은 하루는 주간, 하루는 야간근무를 하는 식으로 근무를 교대하는데 야간에는 자연스레 피곤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커다란 컨테이너 건물에 냉난방 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데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콘베이어 벨트로 인한 소음, 엑스레이 영상을 판독하느라 눈에 쌓인 피로까지 우편세관은 그야말로 공장을 방불케 한다.

일반인이라면 이런 곳에서 한 시간만 있어도 시끄러워 빠져나오고 싶겠지만 세관 직원들은 한 번 근무할 때마다 12시간 이상을 여기서 일해야 한다.

더구나 주간에는 엑스레이 영상 판독요원, 개장검사 직원 등 분야별로 업무를 나눠서 하지만 야간에는 배치 인력이 주간보다 줄어들어 그것도 꿈도 못 꾼다. 그만큼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백 행정관이 메트암페타민을 적발할 때도 이런 상황이었다. 백 행정관은 "낮에는 업무가 분업돼 있지만 밤에는 두 사람이서 우편물을 열어보고 판단한다"며 "밤이라 우편물이 적긴 하지만 인력 배치도 줄어들어 업무량이 적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백 행정관은 엑스레이 영상의 음영이 다른 것을 보고 마약이 있음을 의심했다. 국제특급우편 같은 경우에는 전화번호가 기재된 것이 보통이지만 마약이 들어있던 우편물에는 전화번호가 없던 것도 백 행정관의 눈에 걸려들었다.

백 행정관은 "요금이 비싼 특급우편(EMS)으로 소량의 비타민이 반입된 점을 수상히 여겨 엑스레이 영상을 확인한 결과 이물질이 있음을 발견했다"며 "이온 스캔 및 정밀 개장검사를 실시하자 메트암페타민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백 행정관은 지난 2월 위조졸업증을 적발하기도 했다. 위조졸업장 수요가 많은 입학 시즌이었기에 검사를 강화하던 중, 발송인과 수취인이 각각 다른 언어로 기재된 것을 발견하고 우편물을 열어 검사한 결과, 위조졸업증과 위조인장을 발견했다.

□ "국경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버틴다" = 제시간에 잠을 못 자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있을까.

밤샘 근무는 착한 사람마저 예민하게 만들어버릴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 유지도 힘들게 만든다.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세관 직원들은 저녁에도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친구도 편히 만날 수 없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도 녹록치 않다. 하루는 낮에 하루는 밤에 일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 뿐더러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그래도 백 행정관은 쉬는 날에는 아이와 많이 놀아주려고 애를 쓴다고 한다. 스트레스는 세관에서 동아리 활동 같은 것으로 풀지만 백 행정관은 국경을 지킨다는 사명감 때문에 일 자체로 인한 스트레스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전했다.

백 행정관은 "국경을 지킨다는 사명감과 더불어 우리나라 경제의 대부분을 무역이 차지하는데 내가 그런 것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 보람이 있다"며 "무엇 하나를 적발하면 나라를 한 번 지켰다는 생각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큰 자리에서 큰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고 싶다"며 "세관이란 곳이 굉장히 일이 많은 다이나믹한 곳인데 우리가 잠깐 한 눈을 돌린다면 마약이 유입되는 등 사회가 어지러워질 수 있기 때문에 '지킴이'의 역할을 잘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문능력도 가져 무역회사들이 어려움에 처했거나 문의사항이 있다면 도움도 주고 싶다"며 "성실함에 더해 전문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약력]

▲1976년생 ▲오현고 ▲제주대학교 ▲9급공채
▲인천공항세관 휴대품3검사관실, 마약조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