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규모 부채 감면 남발…은행 수익성 악화
해외 진출 경쟁력 뒷걸음…형평성 논란도 가세
"도대체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겁니까? 빚내서 집 산 걸 나라에서 갚아주면 빚 제때 갚은 사람은 손해 보는 게 아닌가요?"
자영업을 하고 있는 A씨(50대)는 요즘 뉴스를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국민행복기금이니 하우스 푸어(House Poor) 대책이니, 여기저기 정부에서 빚을 깎아줬다는 소식들이다.
박근혜 정부의 가계 부채 대책으로 채무 조정을 받을 수 있는 서민층은 올해 최대 100만명.
정부는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 한류(韓流)를 선언, 금융 산업과 금융 인재들의 해외 수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이 같은 대규모 부채 감면 정책은 은행의 수익성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회사들이 해외에 진출해 경쟁력을 발휘하려면 튼튼한 건전성이 기본이 돼야 하는데 후진적 관행이 오히려 금융 선진화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민간 연구 기관의 한 금융 전문 연구원은 "새 정부가 공약을 지키기 위해 빚을 감면해주는 포퓰리즘 성격의 정책은 장기적으로 볼 때 금융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새 정부 출범 이후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1.92%까지 치솟았다. 2011년 3월 0.91%, 지난해 3월 1.48% 수준과 비교해 급격하게 상승했다.
또 정부로부터 수혜를 입은 채무자들 입장에서는 재기의 기회로 여길 수 있으나 반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부 계층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대량 손실을 양산한 저축은행 부실 사태나 키코(환율연동 파생상품) 피해자들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한다.
당시 정부는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후순위채(금융회사가 파산하면 변제 순위가 가장 늦음) 투자자나 5000만원 초과 예금자에 대해 보상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지난해 저축은행 영업정지로 돈을 날린 한 후순위채 투자자는 "저축은행 부실 사태도 정부 정책의 실패다. 저축은행이 문을 닫은 뒤 전 재산을 날린 사람도 있는데 하우스 푸어들은 오히려 중산층이 아니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하우스 푸어들조차 전부 다 채무 조정을 받을 수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한국금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빚을 연체했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하우스 푸어는 9만8000가구로 추정되지만 이 중 채무 조정을 받을 수 있는 가구는 2만2000가구(22%)에 불과하다.
정부 당국 관계자는 "주택 거래 회복과 다른 지원 제도를 통해 빚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채무자들 입장에서 볼 때 억울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외환위기 당시 연대보증을 섰다가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된 피해자들도 국민행복기금을 신청해 원리금 중 일부를 감면받을 수 있게 됐다.
이쯤 되다 보니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은행들의 고민도 커져만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배째라' 식의 대출 고객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다"며 "국민행복기금으로 깎아주고, 하우스 푸어들 깎아주고 우리는 언제까지 깎아만줘야 하느냐"고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