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는 탈세와 돈세탁 창구로 활용될 수 있는 2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어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세제상의 우대와 함께 외환관리법, 회사법 등의 규제가 적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전세계의 기업과 개인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피난처가 되고 있다.
조세피난처는 투자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선과 악의 두 측면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또한 조세피난처 국가들이 정보제공을 기피하고 있어 각국의 과세당국이 역외 탈세여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해방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역외탈세로 인해 징수해야할 세금을 거두지 못해 전반적인 과세활동에 지장을 주고 국제조세시스템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조세피난처에서는 대부분 기업이나 개인 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아주 적은 세율을 적용하고, 대신 계좌 유지수수료나 법인 설립 수수료를 받는 유인요소를 제공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조세정보를 제대로 교환하지 않는 국가와 지역의 목록을 공개하면서 조세피난처를 세금이 전혀 없는 완전무세국과 저세율국, 국외소득 면세국, 특수사업소득 면세국 등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 조세피난처의 그늘, ‘역외탈세’의 유형은?
조세피난처 내 페이퍼컴퍼니는 그 자체로는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개인 또는 기업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비자금을 조성할 때 주로 사용하는 역외탈세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커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세절감과 기업의 정상적인 사업목적 수행 상 불가피한 측면으로 인해 아직도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조세피난처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7월 영국의 조세정의 네트워크는 조세피난처에 대한 한국인의 보유자산 규모가 2010년말 기준으로 약 888조원에 달하며 이는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3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888조원이라는 액수는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하지만 국세청은 개인과 기업들에 의한 역외탈세가 상당부분 존재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후 여러 수단을 통해 마치 그 회사가 돈을 번 것처럼 이익을 빼돌려 국내에서는 그만큼 세금을 내지 않는 역외탈세 행위가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조세피난처 내 페이퍼컴퍼니 등을 이용한 대표적인 역외탈세유형으로 내부거래 조작, 무신고 자금거래, 이익을 손실로 위장 비용처리, 익명을 이용한 외국인 위장 등을 꼽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세청이 발표한 역외탈세 적발사례를 살펴보면 탈세수법 과정이 역외탈세 유형과 거의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세청이 제시한 사례 중 하나를 살펴보자. 금융투자 회사 사주 D씨는 홍콩의 대행사를 통해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 수십억원을 송금한 뒤 국내외 금융상품에 우회 투자해 올린 투자수익 중 원금을 뺀 나머지 소득은 신고를 누락하고 투자수익은 해외계좌에 은닉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탈루한 사실이 적발됐다.
█ 페이퍼컴퍼니 설립이 전형적…글로벌 공조체제 강화될듯
이번에 뉴스타파가 발표한 리스트에 오른 18명의 재계 인사들의 경우 한결같이 조세피난처에 개인 명의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은 버진아일랜드에 17개, 쿡아일랜드에 1개, 싱가포르에 1개 등 총 19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연극인 윤석화씨의 남편이자 전 중앙종금 사장 김석기씨는 무려 6개나 되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와 함께 설립배경과 목적의 궁금증과 함께 탈세의혹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특히 김석기 씨의 경우에는, 지난 6일 뉴스타파가 김씨 본인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국내에서 게임사업을 벌이고 있는 정황이 추가 취재 결과 확인됐다고 공개해 의혹의 진실게임에 한 걸음 더 접근함으로써 당국의 조사결과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대표적 역외탈세 유형과 유사한 흐름으로 의심될 만한 케이스라는 것이 전직 조사관 출신 조세전문가의 추정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재 명단만 공개된 상태에서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연관된 계좌를 파악해야하고, 정상적인 해외계좌신고 여부와 그 계좌의 자금흐름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따라 국세청과 관세청, 금융감독원 등 과세당국은 조세피난처를 통한 역외탈세의혹 사안에 대해 본격적인 공조체제를 갖추고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세행위는 조세정의를 흔드는 명백한 범죄”라며 “공평과세와 조세정의 확립을 위해 과세당국은 모든 역량을 동원, 철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조세전문가들은 “재정위기에 직면한 각국이 세수확보 차원에서 역외자금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글로벌 공조체제 구축에 적극 나서는 등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며 관련법과 제도를 정비해 조세피난처로 유입된 자금들이 탈세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감시와 공조체제 구축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