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국세청에 한 진술 너무 구체적…믿을 수밖에”
철근을 사고 파는 두 회사의 중간에 끼어들어 형식적인 세금계산서로 회사 외형을 부풀려오던 사업자가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을 땐 '가공거래'를 인정했다가, 국세청 고발로 검찰수사를 받을 땐 '실질거래'라고 말을 바꿨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됐을까.
이 사업자는 검찰수사에서 '혐의없음'을 끌어내는가 하면 '세금추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도 서울행정법원에서 승소하는 등 말을 바꾼 효과를 톡톡히 보는가 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의 문턱은 결국 넘지 못했다.
법정에서 증거로 나온 이 사업자가 세무조사를 받을 당시에 했던 진술이 너무도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진술내용 자체로도 객관적인 합리성을 띠고 있어서 고등법원 판사들도 그의 진술을 믿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재판장 이태종 부장판사)는 가공거래 혐의로 부가가치세를 추징 당한 M사가 '세금추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과 관련, M사의 주장을 받아들인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국세청 승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재판부에 따르면 M사는 지난 2008년부터 이듬해까지 A사로부터 37억3000만원 상당의 철근을 사들이며 세금계산서 55매를 받았고, 비슷한 시기 B사에 37억 6800여만원을 받고 이 철근을 팔면서 세금계산서 63매를 발행했다.
서류만을 봤을 땐 철근이 A사→M사→C사로 움직이는 단계를 밟았지만, 실제 철근은 M사를 거치지 않고 A사에서 B사로 직접 움직였다.
M사는 서류상의 거래 내용대로 부가가치세를 꼬박꼬박 신고했고, 매출 부가가치세액에서 매입 부가가치세액을 공제한 나머지 세액을 모두 납부한 것은 물론이다.
국세청은 M사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이 거래가 가공거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2010년 7월 1억5000만원이 넘는 부가가치세를 부과했다. M사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했지만 심판원이 결정을 미루자 행정법원으로 올라가 승소하게 됐던 것.
국세청의 항소로 사건을 맡게 된 고등법원 재판부는 거래의 당사자인 M사와 A사, B사는 모두 법적 실체가 있는 법인임을 인정했다. 또 M사가 매입·매출내역을 모두 정상적으로 회계처리 하고 그 차액에 대한 부가가치세, 법인세를 신고·납부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M사는 상품매출액을 부풀리기 위한 목적으로 외형적으로만 A사와 B사 간의 거래 중간에 끼어든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M사의 거래가 가공거래라고 판단한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M사의 입에서 나왔다.
M사는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가공거래여부를 묻는 세무조사요원에게 "단지 세금계산서만을 수수했을 뿐 실물거래는 없었다. 거래와 관련된 어떠한 위험, 즉 상품의 소유권이나 재고에 관한 부담 또는 반품에 대한 위험이 없었으므로 가공거래가 맞다"고 진술했다.
또 가공거래를 한 이유에 대해선 "매출을 증대하기 위해 회사의 실제 운영자가 철근을 매입하는 B사에 부탁한 것으로 실물과 관계없이 세금계산서를 받거나 발행했다"고 했으며, 대금 결제나 정산방법 등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진술한 것.
그 뒤 M사는 검찰수사를 받을 땐 "회사의 거래는 가공거래가 아닌 실물거래다"면서 "세무조사를 받을 때 가공거래를 인정한 것은 세금을 조금 내면 끝날 것으로 생각해서 그냥 인정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는 것.
재판부는 이와 관련 "M사의 대표이사와 직원의 진술은 그 내용이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그 내용 자체로 객관적인 합리성을 띠고 있다"며 "세무조사 담당 공무원의 강요나 위계 등으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허위로 진술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대법원의 앞선 판례를 감안할 때 "세무조사를 하면서 납세의무자로부터 가공거래임을 자인하는 내용의 확인서를 받았다면 그 확인서가 작성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작성됐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 자료가 없는 이상 증거가치는 쉽게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고법의 판단.
재판부는 특히 "가공거래에 대해 국세청의 고발로 검찰청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지만 조세재판에서 제출된 여러 증거내용에 비춰 관련 형사사건의 사실 판단을 그대로 채용하기 어려울 경우 이를 배척할 수 있다"고 강조, M사의 검찰에서의 진술을 증거에서 배제했다.
재판부는 판결문(2012누28027. 2013. 6. 13)에서 "M사의 청구는 이유 없어 기각할 것인데 1심 판결이 이와 결론을 달리해 부당하다"며 "국세청의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M사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