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설계, '정답' 없지만 '원칙'은 있다

20·30대 종자돈 마련, 40대 부채관리 중요

대다수 월급쟁이 직장인들에게 은퇴는 곧 '절벽'과 같다. 은퇴 이후 이어지는 이른바 '재정절벽'에 속수무책인 직장인들의 한숨이 깊어지는 이유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평균 수명 100세가 곧 도래한다고 하지만 당장 빠듯한 월급을 쪼개 노후 대비를 위해 차곡차곡 계획을 세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허승택 NH농협은행 은퇴연구소장(사진)은 "고령화 시대에는 은퇴 이후에도 30~50년을 더 살아가야 할 텐데 제2 인생설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지적한다.

은퇴설계에서 개개인마다 주어진 여건이 틀려 정답은 없지만 나름대로 지켜야 하는 원칙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 그의 충고다. 

NH농협은행 은퇴연구소는 은행권 최초로 고객들의 은퇴설계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진 연구소로 퇴직연금 사업과 연계한 근로자의 복지향상을 위한 재무설계 뿐만 아니라 귀농 등 비재무적인 컨텐츠에도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조세일보에서는 100세 시대를 맞이해 허승택 소장에게 '인생 2모작'을 위한 '은퇴의 기술'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은퇴준비, 'STOP'은 없고 'GO'만 있다 = "은퇴설계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사람마다 여건이 틀리기 때문이다. 은퇴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은퇴 이후 어떤 생활을 누릴 것인지다."

은퇴 설계를 할 때 은퇴 전 자신의 생활수준, 건강상태, 어디에 거주할 것이며 여가생활은 어떻게 보낼 것인지 등이 중요한 고려대상이 되는 이유도 사람마다 은퇴 생활의 기준과 여건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라는 게 허승택 소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은퇴설계를 위한 공통된 원칙은 있다. 바로 '꾸준함'이다.

허 소장은 "은퇴를 위한 금융자산 준비에서 중요한 것은 끝까지 가야하며 중간에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은퇴자산의 기본은 '죽어도 GO'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후 설계를 위한 돈은 아예 없는 셈 쳐야 한다"며 "다만 리스크에 대비한 분산투자는 예외 없는 법칙이다"고 조언했다.

은퇴 이후 풍족한 노후를 즐기기 위해 상당한 금액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조급증이 발동할 수도 있지만 노후 설계의 '가장 든든한 아군'은 바로 '시간'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바로 지금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고, 장기간 흔들리지 않는 '꾸준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돈 한 곳에 묻지 말고 종자돈부터 만들어라 = 은퇴설계에 대한 확신이 섰다면 가능한 빨리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령대별 재무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허 소장은 20·30대에는 종자돈 마련, 40대는 부채관리, 50·60대는 인출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0·30대는 보다 장기적인 인생설계가 필요한 시점으로 특히 결혼자금 마련이나 자녀양육에 대한 선행계획이 없이는 안정적인 노후도 보장받기 힘들다.

이에 취업을 하게 되면 국민연금과 함께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들고 소득의 10%를 이를 위해 사용하고, 소득의 60% 이상을 저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문이다.

허 소장은 "차나 집과 같은 겉멋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며 "안정적으로 종자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예금과 펀드에 7대 3 정도의 비율로 투자를 할 것을 추천한다"고 전했다.

40대는 보다 공격적인 투자를 권유했다. 예금과 펀드의 비율은 3대 7로 역전시키고 자녀 교육비도 30% 이상 지출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한다는 것.

그는 "40대는 소득이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이지만 자녀 교육비와 주택 마련을 위해 부채 또한 늘어날 수 있는 시기다"며 "추가적인 여유자금 마련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부채관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50·60대는 가능하다면 연금의 수령 시기를 늦추고 현역시기를 연장하기 위한 '인출관리'가 강조된다.

허 소장은 "국민연금의 경우 1회에 한해 최대 5년간 연금 수령 시기를 늦출 수 있는 연기연금제도가 있다"며 "이를 활용할 경우 연금 연 가산율이 7.2%나 상향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현역시절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자산을 축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생 현역'의 개념을 실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은퇴 후 약 50만원의 근로소득만 올릴 수 있다면 이는 약 2억원의 정기예금을 가지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자신의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40% 이상이거나 이자비용이 10% 이상 발생하고 있다면 이를 과감하게 조정하는 결단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저금리시대, '고수익'보다는 '안정성' = 저금리와 저성장 시대에 과연 자산관리의 포커스는 어디에 맞춰야 할까?

허 소장은 "금융자산 관리의 첫 번째 포커스는 리스크 분산을 위한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수익에 현혹된 '묻지마 투자'는 금물이며 분산투자를 통해 안정적인 노후자금 마련이 우선이라는 소리다.

최근 해외채권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고위험 자산군에 눈길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해외채권상품의 투자등급과 환 헤지 여부 등 상품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투자를 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

펀드 등 간접투자 상품도 꼼꼼히 살펴보고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 극복을 위한 신중하고도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또 노후 생활을 대비한 금융자산 관리의 또 다른 핵심 사항으로 '자산구조의 리밸런싱'을 꼽았다.

갑작스럽게 목돈이 필요한 이벤트가 발생할 때 유동성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이에 대처하기 위한 평상시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실제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은퇴를 앞둔 50대의 경우 총 자산에서 실물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6.8%, 60대 이상에서는 81%이 넘는 것으로 조사된 것도 은퇴 전후의 연령대가 얼마만큼 유동성에 취약한 지를 보여준다.

유동성 확보 방법으로는 주택 규모를 줄이거나 주택연금을 활용하는 방법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서는 월급처럼 매달 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을 가까이 하는 것도 중요하다.

허 소장은 "퇴직으로 인해 갑작스레 고정수입이 없어지게 되면 생활이 곤란해 지기 때문에 즉시연금, 월지급식펀드, 월이자지급식 예금 등 월급처럼 매달 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노후 생활을 보다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돈보다 더 중요한 은퇴조건은? = 은퇴준비를 위해서는 재무적인 요소와 함께 비재무적인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허 소장은 "은퇴 후 자식 자랑 밖에 할 이야기가 없다면 비극의 시작이다"고 단언했다.

은퇴준비에는 꾸준한 건강관리, 가족과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에 투자, 은퇴 후 생활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취미 등에 대한 고민이 함께 병행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은퇴는 본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은퇴를 대비한 부부 관계의 재설정, 자녀로부터의 독립 등을 갖도록 해야 한다"며 "평상시 잘했던 것, 좋아하고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통해 일로부터 건강과 행복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허 소장은 은퇴준비를 위한 체크리스트에 '나의 은퇴연령과 예상수명은 몇 세인가', '은퇴 후 필요한 지출금액은 얼마인가', '은퇴후 목돈이 소요될 사건이 발생할 것인가', '은퇴 후 받을 소득의 종류, 금액, 발생기간, 부족금액 등 보유자산은 얼마인가' 등을 포함시켜 꼼꼼히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또 '위험대비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보장범위를 알고 있는가', '은퇴 후에도 이용할만한 금융기관 및 자산관리 전문가를 알고 있는가',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있는가', '취미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와 모임이 있는가' 등도 체크 포인트로 꼽았다.   

마지막으로 허 소장은 "최근 금융기관들의 노후 설계 사업이 단순한 장수리스크 부각으로 인한 고객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마케팅에 치우치는 것 같아 많이 우려된다"며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긍정적인 시니어 문화 확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