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멈춘 지 올해로 60년이 된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서명발효된 정전(停戰)협정(Armistice Agreement)은 "궁극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력행위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했다.
정전은 전쟁을 끝내는 종전(終戰)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목적을 위해 서로가 일시 교전을 중지한 데 불과하다.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긴장이 고조되면 언제라도 전쟁은 다시 발발할 수가 있다. 휴전선에서 총성이 멎은 지 60년이 된 지금도 한반도는 '기술적(technically)으로 전쟁상태'에 놓여있다.
그나마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빌미로 지난 3월 11일 이 정전협정의 완전 백지화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정전협정의 수정과 증보는 반드시 상호합의를 거쳐야 하고, "상호합의에 따라 다른 협정으로 교체될 때까지 효력을 가진다"고 협정은 명시하고 있다.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부터 군사정전위 정례회의 불참, 유엔사 해체 주장 등 정전협정 무효화 시도와 함께 '압박성' 군사도발을 병행해 왔다. 한국이 정전협정체결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을 제외시키고,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고집하고 있다.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그들 체제의 생존과 유지를 보장받고, 상호불가침 합의하에 각종 제재 해제를 통한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보장받으려는 의도다.
정전협정은 항구적 평화를 위한 과도적 조치다. 일정한 과도기를 거쳐 평화협정 체결로 이행되는 것이 세계전쟁사의 흐름이지만 한반도의 경우 그 과도기가 60년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 그에 이은 정전협정백지화 선언은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켜 평화협정에 미국이 응하도록 압박하는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다.
한반도에 진정한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정전이 아닌, 종전을 선언하는 평화협정이 하루속히 체결되어야한다. 하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그들 체제생존을 위한 수단적 의미에서의 평화협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전협정서명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을 제외한 상태에서 평화협정 체결은 우리입장에서 더 더구나 받아들일 수가 없다. 선(先) 체제보장 과 선(先) 핵포기를 놓고 북미 간에 피곤한 줄다리기만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중국 베이징대학의 어느 교수는 얼마 전 한국전쟁을 '제로섬 게임의 열전'으로 표현했다. 남북한이 '실지(失地)회복'과 '국토완전 정복'으로 극한 대치하며, 대화도 담판도 없고, 서로가 승자라고 우기는 특이한 전쟁이라고 했다.
남북한 참전용사들은 60년이 된 지금도 전쟁 분위기속에서 증오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고 , 전쟁으로 갈라진 천만 이산가족들은 생이별의 한을 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기는커녕 '없어져야 할 존재'로 인식하는 상황에서 종전이나 화해, 평화공존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없다'며 대화에 조건을 달고, 대화노력을 북한에 대한 '퍼주기'로, 대화파를 '종북(從北)세력'으로 몰아치는 이념대결속에서 대화를 통한 평화는 요원하다.
우리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균열은 "하나의 정치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된 정치권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논란이 상징적이다. 국가정보기관이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것도 문제지만 같은 회의록을 놓고 여야 간 해석이 그토록 다를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다. 최소한의 상식과 언어를 공유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란 정치공동체는 실종된 상태다.
정전협정에 군사분계선은 해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NLL은 1953년 정전협상 과정에서 해상경계선 설정에 실패하자 유엔군 사령관이 남북 간 해역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설정했다. 국제법상 영토로 인정받는 경계선은 아니다.
NLL과 관련된 유일한 문서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다. 기본합의서는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은 현실적으로 NLL을 의미하며 쌍방이 지금까지 NLL을 남북 간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하고 실효적으로 유지시켜 왔다는 얘기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시절 남북 간 기존 해상 경계선 존중을 전제로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 설정 방안을 북한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표명한 바 있다.
고약한 것은 NLL의 '국내정치'다.
새누리당은 대선 때 이를 '폭로'해 선거정략으로 활용했고, 선거개입으로 국정원이 궁지에 몰리자 국면전환용으로 '대화록' 논란의 불을 다시 지폈다. '영토주권 포기세력', '안보불안세력'에 대한 여권의 공세에 야권은 '죽은 대통령 명예 지키기'에 사생결단이다. 보수 진보 양 진영이 이 논란에 가담하면서 이념으로, 진영으로 대한민국을 둘로 갈라놓고 있다.
전시(戰時)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의 '정치'도 우리 사회의 이념적 균열과 무관치가 않다.
국방부는 재연기 요구의 이유로 한반도 안보상황, 북한의 오판가능성, 한국군의 준비부족을 꼽았다. 하지만 전작권 전환 논의가 시작된 2005년 10월 이후 우리 국방부는 8년간 정보지휘통제 능력 향상과 장비 현대화를 꾸준히 진행해왔고 미국도 이런 점들을 고려해 애초 전작권 전환에 동의했었다. 북한 핵무기는 전작권 전환 여부와 관계없이 한미 양국이 확장 억제력 제공을 통해 함께 대응키로 이미 합의한 사항이다.
지금까지 전작권을 넘겨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해 온 국방부가 시한을 2년5개월 남겨두고 '준비부족'을 이유로 재연기를 요구하는 것은 전작권을 가져올 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한국의 경제력이나 군사력, 국제사회 위상을 볼 때 어울리지 않는 요구이고, 그 배경으로 미국은 한국의 국내정치를 주목하는 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유엔참전용사추모식에서 "대한민국은 아직도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고 불안한 평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남의 일처럼 말했다.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신뢰프로세스란 이름으로 '북한 길들이기'에 열중할 뿐 어떻게 분단을 해소하고 어떻게 항구적 평화를 이루어낼 지에 관한 주체적 의지와 구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
남북한이 윈윈 아닌, 제로섬게임의 대결구도에 매달려있는 한 정전 60년을 맞은 한국전쟁은 역사상 가장 길고도 지루한 전쟁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