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학계, 차명계좌 금지 놓고 뜨거운 설전 벌여
"차명계좌 각종 범죄 악용…실효성 확보 위한 제재 필요"
대기업의 비자금이나 불법 자금 세탁을 막기 위해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지 20년.
제19대 국회가 출범한 뒤 처음으로 여야가 한자리에 모여 차명 계좌 차단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과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12일 국회에서 정책 토론회를 열고, 향후 차명 계좌 근절 방안에 대해 학계와 정부 관계자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강길부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새누리당), 김정훈 정무위원회 위원장(새누리당), 박민식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새누리당), 홍종학 의원(민주당),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등 학계와 정부의 저명한 인사들이 참석했다.
최근 CJ그룹이나 전두환 전(前)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 떠들썩해지면서 차명 계좌에 대한 논란에도 불이 붙었다.
이만우 의원은 "현행 금융실명제가 당초 목적했던 경제 정의를 실현하는데 성공했는지 묻는다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금융실명제 20년을 점검하고, 특히 차명 거래를 악용한 불법행위의 근절에 대해서 주로 논의하고자 한다"며 토론회를 연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민병두 의원은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에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것은 '개혁적 결단'이었으나 이를 제도화하지 못해 결국 '절반의 개혁'에 불과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현행 금융실명법은 실명 아닌 가명(假名)을 규제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예컨대 과거에는 은행에서 '김개똥'이라는 이름을 적어도 예금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실제로 존재하는 명의, 즉 가족이나 지인의 이름이라도 합의가 있으면 차명을 허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명 계좌는 결국 불법적인 정치자금 수수나 조세 포탈, 범죄 수익 은닉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최근의 사건들을 통해 드러났다.
최근 민병두 의원 등은 금융 차명 계좌를 금지토록 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차명 거래가 적발됐을 경우 거래자뿐 아니라 금융회사에 그 책임을 묻는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게 '증여 의제'를 적용, 금융 재산의 실제 주인은 이익 반환 청구를 할 수 없다.
더불어 실권자와 차명인 둘 다 금융자산의 30% 내에서 과징금이 부과되며 명의 이전을 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내도록 규정했다.
이성우 법무법인 중정 변호사는 "차명 거래는 일부 재벌 오너와 고액 자산가의 불법적 행태를 떠나서 일련의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이 금융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키고 서민의 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순섭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는 "차명 거래는 자본시장에서의 불공정 거래와 금융 사기, 횡령이나 배임을 통한 비자금 조성과 같이 각종 범죄 수단에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차명 계좌를 이용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그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재 수단을 도입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