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 마디에…기재부 '멘붕', 방향타 수정하나

2013년 세법개정안이 몰고온 '소용돌이'가 결국 세법개정안을 만든 기획재정부를 덮쳤다. 여론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당초 세운 정책기조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다졌던 기재부는 말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에 빠져든 모양새다.

중산층 근로자에 대한 세부담 증가를 골자로 한 2013년 세법개정안은 지난 8일 발표되자 마자 엄청난 반발여론에 휩싸였다.

야당은 그렇다 치고,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여당마저도 반발여론에 밀려 등을 돌렸고,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기재부의 전향적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정책 기조를 그대로 밀어붙이려던 기재부의 방침은 큰 폭의 선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 이상 고집을 부리기에는 주변의 상황이 우호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서민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인데 서민과 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게 하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 방향과 어긋나는 것"이라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사실상 '비토'를 놓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대한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는지는 다소 불분명할 수 있지만, 현재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축을 감안할 때(중산층 근로자 세부담 증대) 정부의 핵심 정책기조를 재검토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기재부도 대통령의 발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 일각에서는 현재 들끓고 있는 반발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발언으로 의미를 축소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정부 스스로 정책기조 전환을 선언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문제는 '연쇄효과'다.

기재부의 설계상 중산층 근로자 세부담을 올려 마련된 재원으로 근로장려금 지급대상 확대 및 지급액 인상, 자녀장려세제 지급예산을 확보하도록 연동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제조건을 수정할 경우 이와 연동된 부분에 대한 수정도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발언이 목표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수정이 가해질 경우 사실상 세법개정안의 핵심 전체를 뒤바꿀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 기재부 내부의 시각이다. 이 과정에서 또다른 계층의 세부담 증가로 인한 반발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다.

정책 불신에 대한 부분도 걱정거리. 발표한 지 채 일주일도 안되어 정부의 정책기조를 수정할 경우, 정부 신뢰도에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올해를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 상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 기조를 줄기차게 밀어붙일 방침이었다. 특히 법인세 등 굵직굵직한 세목에 대한 증세기조를 추진할 계획이었던 정부 입장에서는 쉽게 방향타를 전환하기가 이래저래 난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원망'의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행을 위한 재원마련이라는 숙제를 던져놓고, 어느 정도 수준의 비난을 감수한 채 묘안을 짜냈지만 대통령이 이는 정부의 방향성이 아니다, 식의 평가를 내놓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의 세수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일정 부분의 증세 없이는 공약가계부 상 재원을 마련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며 "공약은 공약대로 추진하겠다면서 기껏 내놓은 재원마련책을 대통령이 직접 잘못됐다고 한다면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오전 11시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세법개정안과 관련한 당정회의를 개최했다. 이후 오후 4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긴급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현 부총리 주재 하에 세법개정안 수정방안을 논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