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측근들 청-정 '소통' 차단…"제2의 진영 나올 것"
김기춘 비서실장 취임 후 '줄사퇴', 우연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항명 논란으로 혼란을 빚고 있다.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앞서 양건 전 감사원장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퇴로 촉발된 논란은 진 전 장관의 항명 사퇴로 정점을 찍었다.
이들의 연이은 사퇴를 둘러싸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불통 정치'가 일부 측근들의 주도 하에 더욱 증폭되면서 빚어진 참사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인사파동의 시점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필두로 한 2기 비서진이 자리한 직후였다는 점은 정치권 안팎의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대목. 소수의 측근이 내각을 주무르는 형태의 폐쇄성이 지속되는 한 인사파동을 비롯한 국정난맥 상황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 김기춘 취임하자 '줄사퇴'…불통 정치 정점 찍었다? =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시키는 방안에 항명한 진 전 장관의 사퇴강행 배경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 2기 비서진의 영향력 확대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비서실장과 함께 임명된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이 복지부 장관을 제치고 관계 공무원들을 직접 상대하며 복지공약 이행방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청와대 수석이 장관보다 앞에 나서는 상황이라면 장관이 책임감을 갖고 정책을 추진할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개국공신'이자, 실세장관으로 불리던 진 전 장관이 무력감을 운운한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비서진을 통해 내각에 '상명하달'하는 박 대통령의 폐쇄성은 '찍어내기설'이 대두된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논란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일 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채 전 총장 사퇴와 관련한 국회 긴급현안 질의에서 이에 관한 의혹을 제기했다.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정원에 채 전 총장의 사생활 자료를 요청하고 이후 언론사 편집국장을 만나 '채 총장은 내가 날린다'고 발언했다는 것이 주 내용.
실제 해당 언론사가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설을 보도한 이후 김 실장이 중심인 된 청와대 '배후설'이 여의도 안팎에서 나돌았었다. 신 의원은 김 실장이 검찰 출신 정치인을 만나 '채 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들 방법이 뭐냐'고 묻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대공수사를 총지휘했던 김 실장과 홍경식 전 서울고검장이 민정수석으로 임명될 때부터 사정라인 재조정은 예상됐다. 유례 없는 검찰총장 감찰로 채 전 총장은 사실상 사퇴를 종용받았다는 것이다.
앞서 헌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양건 전 감사원장도 두 사람이 청와대에 입성한 지 18일 만에 전격 사퇴했다. 양 전 원장은 퇴임하며 "재임 동안 안팎의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끌어올리려 안간 힘을 썼지만 되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한다"며 외압 가능성을 시사했다.
□ 비서진만 통하는 朴의 '장막 정치'…"제2의 진영 나올 것" = '진영-채동욱-양건'으로 이어지는 인사파동의 촉매제로 지목된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측근정치'는 결국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하고 권력의 비민주성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진 전 장관의 사퇴 논란에 대해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장관의 반발"이라며 "청와대 정책결정 과정에서 폐쇄성이 드러났다. 결국 대통령이 측근 몇몇으로 장관에게 상명하달하는 '불통'이 강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이어 "책임장관제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이 역시 공약 파기"라고 말했다.
정치학 박사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도 "권력은 친분이 가까운 사람들과 운영될 때 손발이 맞을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게 되면 합리성을 잃기 쉽고 결국엔 공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있다"며 "좁은 관계에서 갈등이 일어나면 '치정극'이 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라고 꼬집었다.
박 대표는 "권력이 문민화되지 않으면 대통령제는 '왕정 체제'나 다름없다"며 "어려워도 집권당은 물론 야당, 시민사회와 논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일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실장이 '부통령', '왕실장'이라고 회자되는 상황에서 당 내부의 우려 목소리도 높다. 한 관계자는 "지도부나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청와대와 여당이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도 존재한다. 박 대통령의 측근정치가 바뀔 리 없다는 이야기다. 당 전략기획 측 한 인사는 "솔직히 대통령의 (폐쇄적인) 스타일은 '상수'다. 대통령에게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도부가 진영 장관을 더 비판하는 것"이라며 "이런 식의 안 좋은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제2의 진영이 또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