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감리시 피감회사 제공자료만 검토
"계획된 회계부정은 찾기 어려워" 한계 토로
"사후약방문식 감리절차 개선 필요"
최근 탈세 및 비자금 조성 혐의를 받고 있는 효성그룹에 대한 의혹이 커지면서 감독당국의 회계감리에 대한 한계점이 지적되고 있다.
현행 상장기업의 제출 자료에 근거한 제한적 회계감사가 기업에서 작심을 하고 분식회계를 할 경우 이를 제대로 판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느냐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재차 점화되는 분위기다.
최근 일련의 사건에서 드러난 효성그룹은 정부의 제도를 악용해 부정을 감춘 사실이 드러난 데다가 계획적으로 조작한 분식회계의 경우 공식적인 조사절차를 통한 부실발견이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과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정부는 기존에 있었던 분식회계를 자진 신고하고 이듬해 말까지 재무제표를 수정하면 잘못을 묻지 않는 형식의 사면제도를 임시적으로 시행했다.
정부에서 정확한 공시를 유도하기 위해 회계분식에 대한 면죄부를 준 일종의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제도가 시행된 이듬해인 2006년 2월, 효성은 35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자행했다고 자진신고 했다. 1조원대의 부정 중 일부만을 드러내 감독당국의 시야를 가린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당시 효성은 매년 상장기업 중에서 일부를 뽑아 실시되는 표본 감리대상에 선정돼 금감원의 감리를 받게 됐음에도 추가적인 부정이 발각되지 않았다.
당시 감리를 맡았던 금감원 관계자는 "효성이 신고한 부분 외에는 회계부정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1년여를 끌어온 감리에서도 분식여부를 가려내지 못할 정도로 기업의 계획적인 부정에 현행 금융당국의 감리시스템이 맥을 못 춘 것이다.
이 관계자는 "2004년 이후로 조사방식이 바뀌었다. 기존에는 50여개 업체들을 무작위로 선정해 집중 점검하는 식이었지만 2006년에는 260여개 업체로 조사를 확대하되 회사들이 전달해준 자료만 들어다 보는 형식"이라며 감독 실패에 대해 해명했다.
이 제도를 놓고 업계 관계자들은 같은 기간부터 시행됐던 증권집단소송제의 파급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한다.
증권집단소송제란 소액주주들이 주가조작이나 분식회계, 허위공시 등으로 피해를 볼 경우 한 사람이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같은 피해를 본 주주들도 똑같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의미한다. 기업입장에서는 경영위축 및 소송비용 등의 부담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집단소송제가 실시되면서 고도성장기 시절 회계분식을 누적해 온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고꾸라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경제계 전반에서 분식회계가 만연했었던 시기였던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방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고,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국회를 설득해 집단소송법 시행을 2년 동안 보류했다는 전언이다.
효성에 대한 금감원 감리는 당시 그렇게 종결됐지만 추가적인 부정은 국세청에 의해 발각됐다. IMF 이전부터 발생한 부실을 다른 자산 계정에 기입하고 감가상각비 명목으로 조금씩 덜어내 오고 있었던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금감원은 28일부터 효성그룹에 대한 감리에 들어갔다. 역외거래 및 임직원들의 횡령과 배임을 통한 분식회계 여부 등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감리에 들어가는 금감원 직원들은 "검찰에 최대한 협조를 구하고 효성그룹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지만 과연 제대로 된 검증이 가능할 지 여부는 미지수다.
현행 금감원에서 실시하는 감리는 대상회사의 협조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압수수색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검찰조사와는 별개의 성격이다.
또 회계법인들이 기업들에 대한 일차적인 감사를 하고 있는 만큼 결과보고를 신뢰하고 들어간다는 것이 맹점으로 꼽힌다.
단순히 의혹이 제기됐다고 해서 원점부터 재검토하는 것은 금융당국이 만들어 놓은 제도를 스스로 무시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국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 감리는 피감회사가 가져다 준 자료만 보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이) 완벽하게 조작하면 모를 수밖에 없다"며 "그 와중에 감리에서 발견되는 건 완벽하게 조작하지 못한 것이거나 다른 루트로 소문을 듣고서 알아낸 것"이라고 일부 한계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사후약방문식 감리절차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모 회계법인의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의 감리방식을 보면 사후적 시각에서 판단을 하는 측면이 있다. 예컨대 기업이 A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문제가 터지면 왜 그때 B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감독당국은 사태가 터진 뒤에야 감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왜 기업들이 당시에 그런 선택을 했었는지에 대해서는 고려를 하지 않는다는 하소연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동양사태도 일이 다 불거지고 나서야 감리를 해보겠다고 나서는 것 아니냐. 사건을 사전 방지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해야지 사후 적발을 위주로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어느 기업이 위험하다는 것은 금융당국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부실기업 예측치와 같은 지표를 만들어서 사전 방지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미 문제가 터지고 난 다음에 사후적인 절차를 진행하다 보니 업계에서는 호의적인 반응이 나오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