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감사인 지정제, 감사품질 제고에 기여"
"감사인 지정방식 문제…중소법인 할당제 필요"
감사인 지정제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감독당국에서는 지정제를 확대해 감사인의 독립성을 높여 공정한 감사를 유도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정작 회계법인들은 '업계의 부담을 높이는 처사'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인 지정제란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가 일반기업들에게 특정 감사인을 지정해주는 제도를 뜻한다. 외부감사인은 자유선임을 원칙으로 하지만 기업의 회계부정 발각 등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 예외적으로 증선위가 감사인을 지정한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12월 결산법인 1만8330곳을 대상으로 분석을 실시한 결과, 감사인 지정제도가 감사품질 제고 등 업계환경 개선에 기여했다고 결론지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감사인을 변경한 기업들의 평균 감사수임료는 작년보다 8.2% 감소했다. 또 통념과는 달리 상장기업들이 중소 회계법인에서 대형 회계법인으로 변경한 경우에도 평균수임료는 1% 하락했다.
반면 동일 감사인을 계속 선임한 경우 감사수임료는 평균 3% 상승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임료 부담이 증가하겠지만 회계법인들에게는 적정한 수수료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장석일 금감원 회계제도팀장은 "감사인 지정 시 공정한 감사요구에 따른 감사투입시간이 증가하고 수임경쟁이 제한돼 수임료가 증가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감사인 지정제도가 충분한 감사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감사품질 제고 등에 기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금감원 내부에서는 감사인 지정제를 확대해 회계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감사인 지정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수임료 부담이 생기기 때문에 이부분에 대한 보완을 고민중이라는 전언이다.
문제는 감사인 지정제가 대형회계법인들의 시장독식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이어져오고 있다는 데에 있다.
증선위의 감사인 지정은 금감원이 집계하는 회계법인 평가점수의 영향을 받는다. 점수 산정에는 직원의 수와 근속연수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대형 법인들에게 유리한 방식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소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지정제도는 빅4(삼일,안진,삼정,한영)를 중심으로 배정되고 있다"며 "정부는 중소기업을 살리겠다고 하는데 그럼 중소회계법인도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되면 중소법인들이 살기위해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모 회계법인의 대표는 "지정제를 확대하는 것은 괜찮지만 (중소법인들에게도) 균형 있게 배정해줬으면 좋겠다"면서 "제도를 다시 검토해서 중소법인도 감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소법인이라고 감사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다"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지정제는 점수가 높은 대형법인들에게 편중돼서 수주가 되는 경향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예컨대 대기업은 대형 회계법인에, 중소기업은 중소 회계법인에게 맡기는 식이어서 반드시 4대 법인들에게 수주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한편 대형 회계법인들도 지정제 확대에 대해 썩 달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과거 저축은행 사태 당시 지정감사인으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달성은 커녕 사회적 비난만 받게 된 경우가 생겼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형법인의 한 관계자는 "과거 저축은행 사태 때 지정 감사가 많았는데, 이때 애꿎은 회계법인들이 비난을 많이 받았다"면서 "문제 있는 기업의 감사를 맡았다가 나중에 철저히 감사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설령 일반 수임료의 2배를 받는다 할지라도 도움이 되진 않는다"고 전했다.
업계 고위관계자는 "지정제가 확대돼도 크게 상관없다"며 "감사업무는 채산성이 맞지 않는 분야다. 물론 몇 개라도 더 수주가 들어오면 나쁘지는 않겠지만 기존 수익구조에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일축했다.
이어 그는 "이런 것들이 관(官)의 발상에서는 나올 수 있는 것이지만 업계 쪽에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 문제를 개선하려면 대기업을 늘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