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특별소비세 인하 발표 이면에서 진행된 '보안 유지' 전쟁이 흥미롭다. 특소세 인하는 해당 제품의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전유출'은 곧 '정책실패'를 의미하기 때문. 특히 지난해 여름 자동차 특소세 체계 개편 및 세율 인하 방침이 사전에 유출되면서 곤혹을 치뤘던 정부로서는 이번에는 그 어느때보다 ‘철통보안’에 만전을 기했다는 것.
◇국무위원들도 몰라
우선 '특별소비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나 차관회의 등의 사전 절차없이 국무회의에 곧바로 올린 데서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시행령의 경우 보름동안의 입법예고기간을 통해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진행하고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의결을 순차적으로 거치는 것인 일반적인 절차임을 감안할 때 매우 '이례적'이다. 김광림 재경부차관은 "필요할 경우 국무회의에 직접 올릴 수 있다"며 "보안 유지가 필요한 만큼 이같은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국무회의 전에 다른 부처와 협의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점. 국무위원중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만 특소세 안건이 국무회의에 상정되는 것을 알았을 뿐 나머지 국무위원들은 회의가 시작된 후에야 사태를 파악했다.
사전에 배포되는 국무회의 의결안건 및 보고 안건 리스트에도 특소세 관련 사항은 한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재경부는 부총리가 안건 설명에 앞서 보안을 유지하며 급하게 상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담은 자료를 만드느라 국무회의 전날(22일) 분주한 밤을 보냈다.
◇지난주 결정..부총리도 함구
재경부 세제실은 연초 업무계획에서 일부 품목에 대한 특소세 폐지 방침을 밝힌 후 여론이 특소세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업계에서도 건의가 지속되자 곧바로 실무 검토작업에 착수했다. 실무작업을 통해 탄력세율 적용 등 여러 방안을 마련했다. 준비 완료 상태에서 위선의 결정만 기다린 것.
최종 결정이 난 것은 1주일 전. 이 부총리가 최종 결심을 했고 D-데이가 결정됐다. 이 부총리는 그후 경제장관간담회, 정례기자회견 등을 가졌지만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하루전 열린 재경부 간부회의에서 조차 부총리가 나서 보안을 챙겼다. 테이블위 파일에 특소세 인하 방안이 담긴 안건 리스트가 놓여있자 다른 이들이 볼까 덮고 회의내내 입밖에 내지 않았다.
특히 열린우리당에조차 알리지 않았다. 일부에서 제기될 '총선용' 등의 논란을 막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당과 협의할 경우 정보가 새나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때문. 실제 지난해 7월 특소세 인하 방침의 '사전 유출' 주체도 재경부가 아닌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었다.
◇담당과장, 아내에게도 숨겨
'부총리-차관-세제실장-담당과장-담당사무관'으로 이어지는 수직라인만이 알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특히 담당과에서조차 특소세 인하가 진행되는지 눈치못챌 정도로 보안을 유지했다.
담당과장과 사무관은 일상적인 업무를 추진하는 듯 여유를 부렸다. 눈치를 챘더라도 특소세에 대한 종합적인 개편 작업을 분주하게 진행하는 정도지 인하가 추진 중이었는지는 모를 정도였다.
D-데이가 다가올수록 세제실은 더욱 초조했다. 계속되는 기자들의 취재 공세에 궁색한 답변만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 "결정이라도 안났으면 모를까 시행 시기까지 정해진 상황에서 이어지는 질문이 가장 곤혹스러웠다"는 실무자의 말은 당사자만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한다. 담당과장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아내에게조차 사실을 숨겼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