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청마(靑馬)의 해'가 밝았다. 준마처럼 대한민국이 앞만 보고 힘차게 내달릴지 장애물들에 걸려 주저앉을지, 정치 경제 안보 세 분야에서 엄중한 시련과 도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우리 내부적으로는 소통과 통합이 사라졌다.
한국경제는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7년째 일인당 소득 2만 달러대에 주춤거리며 도약의 발판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대자보에 많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합니다!'를 외치면서 2013년 한 해가 저물었다.
2014년은 박근혜정부가 스스로의 예산을 편성하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는 첫 해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위한 도약대를 마련할 지,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의 함정에 빠져 실패한 국가로 전락할지를 가늠할 분수령이 되는 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교수신문은 새해 바람을 담은 사자성어로 '미망에서 돌아 나와 깨달음을 얻자'는 뜻의 '전미개오'(轉迷開悟)를 선정했다. 가짜와 거짓이 횡행했던 지난해의 미망(迷妄)에서 돌아 나와 깨달음을 얻어 진짜와 진실이 승리하는 한 해를 열어가자는 뜻이라고 한다.
'미망'의 주범은 극한대결을 일삼아온 이 땅의 정치다. 박근혜 대통령이 '법과 원칙'에 집착하면서 국민과 약속했던 소통과 통합의 정치는 실종됐다. 새누리당은 원내 과반 의석을 갖고도 청와대의 눈치만 보는 허약하고 초라한 여당으로 전락했다.
야당의 대안 없는 반대투쟁으로 정쟁이 일상화되면서 민생은 실종되고, 정치가 실종된 자리에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 사회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각종 정국현안을 둘러싸고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게다가 오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국주도권을 잡기위한 여야의 극한대결은 더욱 치열해 질것으로 벌써부터 우려되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엔저공세에도 불구하고 우리경제는 지난해 하반기 3.6% 성장에 3년 연속 무역 1조 달러 달성, 사상 최대 규모 흑자와 수출고 등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취약계층의 증가와 중산층의 약화, 빈부 소득격차 확대는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전세난이 상징하는 부동산시장의 침체, 미래세대를 좌절시키는 청년실업의 만성화 현상은 장기적이고도 근본적 대책이 시급하다.
게다가 인구의 고령화에다 내수경기는 부진에 빠져있고, 밖으로는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와 '아베노믹스'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미·중, 중·일의 갈등 구도가 고착화하면서 박근혜정부의 외교적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집권 3년차의 북한 김정은 정권은 종잡기 어려운 체제다.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시작으로 중국의 '굴기'는 거칠어지고 있고, 아베의 '우경화 폭주'는 주변국가 들이 뭐라고 하던 일단 '정면 돌파'로 '보통국가' 일본을 국제사회에서 기정사실화 해놓고 동북아 지형을 새로 짜자는 전략으로 내닫고 있다.
동맹국인 미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인 중국 사이에서 독자적인 공간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 내부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 수 있는 남북관계에서 실마리를 찾아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치·안보·경제 세 분야에서 전방위로 밀려오는 세기적 격랑과 싸우며 능동적 변화의 기폭제를 우리가 만들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은 국제정치, 외교, 경제, 문화 등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덩치와 국제적 비중이 커진 '대형선박'이다. 하지만 이 배를 이끌어가는 정치는 '나룻배 사공'수준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식 식견과 시대에 동떨어진 현실인식으로 집안싸움만 벌이는 정치로는 대양의 높은 파고를 헤쳐 나갈 수가 없다.
그 일차적 책임은 대한민국호의 선장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지난 1년간 박 대통령이 보여준 국민통합노력은 너무도 실망적이었다. 연말 여론조사에서 58%가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할 정도다.
원칙과 질서 뿐 만 아니라 공감과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야한다. 민생현장 방문이 능사가 아니다. 독일 메르켈총리가 연정으로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는 것을 본받아야 하고, 네델란드나 아일랜드 경험을 참작해 한국판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중재역할에 대통령이 나설 수 있어야한다.
새누리당 의원 150여명이 '군대처럼 움직이는 모습'에서 민의를 대변하는 의회정치를 기대할 수가 없다. 정권비판세력을 '종북(從北)'으로 몰면 '종북' 대 '종박'(從朴)의 극한대결구도 로 귀결된다. 극우세력에 휘둘리지 말고, 대통령 당선을 도왔던 합리적 보수세력을 다시 껴안고, 외연을 확대하는 통합적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야당을 위시한 시민사회의 비판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등 대내소통노력이 무엇보다 앞서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신년사를 통해 '경제'와 '민생' 두 가지를 강조했다. 어렵게 시작한 경기회복의 불씨를 반드시 살려내 경제를 활성화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고용률 70%와 중산층 70%'는 박근혜정부가 내건 핵심 경제 공약이다. 문제는 한국경제를 떠받쳐왔던 수출 제조업만으로는 더 이상 경제성장과 일자리 증대가 어려워졌다는 데 있다. 투자와 소비부족이 겹치면 정부가 돈을 풀어도 경기회복도, 일자리 확보도 안 된다.
서비스분야를 중심으로 한 내수 진작 밖에 길이 없지만 서비스분야 선진화와 경쟁촉진방안과 관련해 기득권층의 반발은 갈수록 집요해지고 있다. 철도파업의 불씨는 여전 살아있고, 의사들은 원격의료와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에 반발해 동네병원 파업을 선언한 상태다.
통상임금 개편은 새로운 노사 갈등과 춘투(春鬪)를 예고하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의 이면에는 젊은 세대의 좌절과 불안이 도사려 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사안들이고, 소통과 설득을 통한 대타협과 통합의 리더십이 더더욱 절실하다.
새해는 1894년 '갑오경장' 120년이 되는 해다.
'경장(更張)'은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풀어 다시 팽팽하게 조인다는 뜻의 '해현경장(解弦更張)'이란 말에서 나왔다. 박대통령은 새해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키워드로 질서와 의식과 제도를 더욱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겠다는 의미로 이를 암시한바 있다.
하지만 거문고 6개 줄 조율의 본질 역시 조화다.
좌우 양극단만 요란한 가운데 합리적이고 건전한 중도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포퓰리즘과 괴담들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상황이다.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사회의 중간에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하며 대한민국이란 거문고가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2014 갑오경장'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