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증권가에 부는 찬바람…총체적 난국
은행권, 허리띠 졸라매고 해외진출 카드 만지작
증권가 "세제개편 통한 주식 장기투자 독려 필요"
금융권이 전반적으로 실적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 등 새로운 경영환경 앞에 놓인 금융사들이 아직까지 이렇다 할 혁신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
최근 국내은행들은 전년에 비해 반 토막 난 성적표를 받은 데 이어 증권사마저 11년만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총체적 난국에 처한 상황이다.
■ 잘나가는 은행은 옛말?…수익 급감에 '울상' = 지난달 금융감독원이 잠정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 53.7% 감소한 4조원을 기록했다.
더구나 지난해 4분기에는 1000억원의 순손실까지 입었던 상황. 분기순손실은 지난 2011년 4분기 이후 2년 만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에 대해 은행권 관계자는 "가장 큰 요인은 금리가 하향 안정화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은행 수익구조에서 이자마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보통 80% 이상인데, 은행 입장에선 금리가 내리면 예대금리차가 좁아지기 때문에 힘들어진다"고 설명했다.
기준금리가 내리면 대출이자는 자연스럽게 떨어지지만 예금이자는 고객 유지 및 신규유치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떨어뜨리기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각종 수수료 절감과 운영비용 상승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과거 2년 간 금융소비자의 권익이 오르면서 그동안 은행들이 받아왔던 수수료를 못 받게 된 측면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금융비용이 줄어드는 것이지만 은행들에겐 손익이 감소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예컨대 지금은 전국 곳곳에 ATM이 설치돼 있는데, 그것도 다 비용이다. 실제로 ATM의 상당수가 손익분기점을 못 넘기고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비용은 늘지만 수수료는 줄어들다보니 이자수익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순이자마진(NIM)은 줄어드니 수지가 안 맞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11년만에 첫 적자…우울한 증권가 = 이 같은 상황은 증권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3회계년도 증권회사들의 당기순손실은 1098억원으로 2002년 이후 첫 적자를 시현했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채권금리 상승에 따른 손실과 주식거래 대금 감소가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던 채권금리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연결이 되면서 작년 5월에 상승세로 돌아섰다"면서 "대형증권사들은 보통 채권을 10조원 이상 보유하고 있어 손실을 많이 입었다. 그 부분이 지난해 부진을 불러온 큰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그는 "거래량이 줄어든 것은 경기와 상관이 있다. 경제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라며 "주식은 기본적으로 리스크가 있는 자산이다. 단기적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투자하려면 장기 보유를 해야 하는데, 금융위기 이후 불확실성이 증대되다보니 돈을 오랫동안 묶어놓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최근의 증권시장이 부진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 끼었던 거품이 빠지고 있는 단계라는 분석도 들려온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증권사들의 최근 실적은 정상(正常)을 향해 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누구나 돈만 생기면 주식을 사는 이상열풍이 있었던 과거와 비교하면 안된다"고 꼬집었다.
■ 실적 배고픈 금융사, 탈출구는? = 은행권 실적회복을 위해서는 이자이익에 대한 의존도 축소와 불필요한 비용절감, 적극적인 해외진출 등이 해법으로 거론된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부실장은 "은행들이 지금 여전히 이자이익부분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순이자마진이 떨어지면 자연스레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방카슈랑스나 펀드판매의 경우 은행에만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보험사 수익에도 도움이 됐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해외진출은 작년부터 꾸준히 필요성이 제기됐고 공감도 많이 받아왔다"며 "금융부분이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해외진출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아야 하는 것은 분명한 일"이라고 전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은행들이 중복점포 정리나 고령 직원에 대한 희망퇴직 등을 통해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발전가능성이 있는 주변국가들로 진출하는 것도 하나의 해답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증권사들의 경우 수수료에 의존하는 수익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조언이 이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서 증권사들의 수수료 의존도가 많아졌지만 아직도 전체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선진국의 경우에는 전체의 30% 수준이다. 나머지 3분의 2를 투자업이나 신규사업으로 충당한다"고 역설했다.
세재개편을 통한 장기투자 유도로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린다.
익명을 원한 애널리스트는 "한국의 세제가 주식 단기 보유를 조장하는 측면이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우리나라의 제도적 유인체계는 단타매매나 장타매매나 세금이 똑같기 때문"이라고 제언했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주식을 1년 이상 보유할 경우 양도차익과세를 절감해 주는 등 장기투자를 독려하고 있다는 것.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혜택이 없어 단기매매를 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곧 주식시장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견해다.
이 애널리스트는 "우리나라는 주식 보유기간이 1년 이상이든 이하든 세금이 똑같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시장을 육성해서 세수를 확보한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면서 "이에 대한 제도 상의 인센티브 도입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