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부족한 것보다 못하다는 뜻이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상태를 '중용(中庸)'이라고 하는데 공자는 이를 매우 소중한 가치로 여겼다고 한다.
고사성어까지 인용해 가며 중용을 언급한 이유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규제개혁' 때문이다. 집권 2년차를 맞은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을 최대 국정과제로 삼고 범 국가적 차원의 규제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관세청은 정부 기조에 맞춰 통관과 관련한 규제들을 대폭 해소해 수출입업체들을 적극 지원, 무역 2조달러 시대를 견인해나가고 있다고 자평 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관세사 업계에서는 관세청의 지나친(?) 규제 완화로 국민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면서 규제개혁과 국민안전 두 개의 목표가 양립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규제개혁-국민안전, '딜레마(Dilemma)' = 관세청이 소위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분류해 나쁜 규제를 적극 개선해야 한다는 국정과제와 국민안전의 최후 보루인 통관검사 강화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가 상충되면서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관세청은 2조 달러 무역시대에 걸맞게, 신속하고 합리적인 통관을 위해 무역활성화를 저해하는 통관 규제사항 5518개 품목을 전면 재검토 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통령의 의중에 딱딱 맞는 기민한 움직임은 칭찬 받을 일이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문제점이 노정된다.
모든 국정목표의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할 '국민안전'이 '규제개혁'이란 과제에 가려 보이지 않고 있는 등 '규제개혁'의 칼날이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지난해 관세청이 추진한 규제개혁 과제와 관련이 깊다. 지난해 추진했던 과제의 대부분이 '통관' 부문에 치중되면서 가뜩이나 현재도 낮은 통관검사 비율이 더욱 낮아지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통관검사 비율은 2~3%에 불과, 1980년 70%였던 것에 비하면 크게 낮아진 상황이다. 100개 물건 중 2~3개만 직접 눈으로 살펴보고 통관을 시켜주는 셈으로 나머지 97~98개의 물건은 사실상 불문처리,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단 뜻이다.
관세청 내부에서는 통관 위험도를 분석해 통관검사 비율을 10%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경제국경을 책임지고 있는 관세청 입장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현재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더 이상 '볼륨'을 키우기 힘들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 '中企 지원' 속 잊혀진 '국민안전'(?) = 통관검사 비율을 10%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규제개혁 추진과제에서 완료된 10개 과제 중 7개가 통관 관련한 규제였다.
규제정보포털(www.better.go.kr)에 올라온 관세청 소관 규제개혁 완료 과제 중 통관 관련된 부문은 ▲수입물품 유통이력 관리대상 및 세관장 확인대상 확대 ▲수입금지지역산 축산물(천연케이싱) 수입검역 소독방법 절차 간소화 ▲성실 중소기업 무담보 수입통관 기준 완화 ▲외국무역선의 개항이 아닌 지역 출입허가수수료 일부 면제 ▲중소 수출기업에 대한 AEO 공인기준 완화 ▲중소기업 전용 전자통관 심사기준 마련 ▲해외 환적화물 처리절차 개선 등이다.
관세청의 통관 부문 규제개혁 내용을 보면,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대전제 속에 규제개혁이 이뤄졌기 때문에 통관 간소화 혜택은 대기업보단 중소기업에 상당부분 돌아갔다.
AEO란 세관에서 기업이 일정 수준 이상의 기준을 충족할 경우 통관절차 등을 간소화시켜 주는 제도로 AEO 공인인증을 받은 업체는 AEO 협정을 맺은 나라와 우리나라에서 모두 통관 간소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인력과 시간 등의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통관 위험도가 더 높음에도 AEO 공인인증 기준을 완화해주는 등의 규제개혁을 중소기업 지원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경고한다.
밀수나 위해물건 등 위험도가 높은 중소기업을,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 진정한 중소기업 지원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한 관세사는 "수출기업이나 관세사 업계 입장에선 통관이 간소화되는 것이 좋지만 그만큼 밀수나 국민안전위해 물품 등의 반입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각종 규제를 풀어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 규제제도를 바라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