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감사인 독립성 확보 시급"
수임료 상승, 회계법인 도태 우려
제도 확대 시 외감법인 배분문제도
올해로 도입 33주년을 맞은 자유수임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각기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회계법인 간 경쟁을 촉발해 감사품질 제고노력을 경주시킨다는 장점이 거론되는가 하면 감사인들이 수임계약을 고려하게 해 기업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는 상황.
이후 감사인의 독립성 확보 미진으로 부실감사 문제가 떠오르자 정부는 제도시행 10년 만에 현재의 지정제를 실시했다. 분식회계의 전적이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은 지정된 회계법인에게 감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회계업계 내에서는 2만여개의 외감법인 중 극히 일부만이 지정감사를 받고 있어 지금의 제도가 과연 지정제와 자유수임제의 절충안이 맞느냐는 볼 멘 소리를 내고 있다.
더구나 감사품질 제고를 위해 자유수임제를 실시했지만, 감사인 선임권을 가지고 있는 기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회계법인의 현실 상 객관적인 감사가 불가능하다는 비난마저 제기된다.
□ 감사 실효성 제기…지정제 확대 논쟁 점화 = 업계 고위 관계자는 "경찰이 도둑을 잡아야 하는데 도둑이 경찰을 정해주는 꼴"이라며 "신규 상장기업, 최초로 외감대상이 된 기업 등 회계처리 능력이 객관적으로 부족한 회사에 대해서는 최소 3년간 지정제를 실시해 초도감사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송을 할 때 피고가 검사나 판사를 지정해서 하지는 않는다"면서 "이에 대한 보완으로 일부 지정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그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지정감사를 받은 외감법인의 비중은 전체의 1.2%를 차지했다. 상장법인만 따로 놓고 보더라도 3.6%에 불과한 실정이다.
아울러 감사인을 자율적으로 선택한 기업의 98.9%는 '적정의견'을 얻은 반면, 감사인을 지정당한 회사는 85.2%만이 재무제표에 이상이 없다는 의견을 받을 수 있었다. 지정제를 실시해야 감사인의 의견이 객관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더구나 감사인의 잦은 교체는 회계법인이 기업 내부사정을 파악하는데 불필요한 시간을 들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몇 년 주기로 외부감사인이 바뀌면 회계법인들이 그 기업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려 초도감사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면서 "미국 코카콜라의 경우 한 회계법인이 100년 가까이 감사하고 있지만 투명성이 문제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기업의 주거래은행이나 특정 환자를 치료하는 전담병원처럼 외감기업과 감사인은 오랜 기간 '같은 배'를 타고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 지정제 확대만이 대안? 불편한 진실은 = 지정제 확대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상존한다. '갑'의 입장에 서게 된 감사인들이 수임비용을 상승시킬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회계법인들이 스스로 감사품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목소리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유가증권 시장 상장법인의 대부분을 4대 회계법인이 감사하고 있다. 지정제를 확대하면 모든 회계법인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빅4'가 하게 된다"며 "이런 상황에서 강제지정을 하면 기업은 아무 선택권한이 없고, 회계법인들이 강제지정을 무기로 수임료를 올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회계투명성이라는 것이 강제지정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면서 "오히려 기업 회계담당자들과 감사인에 대한 윤리교육, 금융당국의 감독기능 강화의 삼위일체가 이뤄져야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지 강제지정만 해가지고 해결될 수 있다는 시각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원한 회계교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회계만 따로 떼어서 지정제를 실시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이는 결국 회계법인들의 품질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일축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과거 지정제를 실시했을 당시 회계법인들이 감사보수를 다소 과다하게 책정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래서 나중에 감사지정을 받은 회사들에게 한 번은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하지만 그래도 자유수임제에 비해 높은 가격에 머물러 있어 기업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지정제 확대 입법 착수…여전히 뜨거운 논란 =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과 금융당국은 최근 지정제 확대를 위한 입법안 작업에 착수했다.
김기준 의원은 지난 3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입법 공청회 자리에서 <조세일보> 기자와 만나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지정제 확대와 관련한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기한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장도 "회계의 투명성과 독립성 제고를 위해 감사인 지정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지한 검토에 들어간 상태"라고 밝히며 동조했다.
이에 금융위는 정부입법안 마련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으며, 지정제가 확대될 경우 회계법인에 배분방식을 정해야 하는 금감원도 바삐 움직이고 있다.
최진영 금감원 회계전문심의위원은 "지정제 확대에 있어 많은 공감이 있었다. 다만 늘어난 지정대상 회사를 회계법인들에게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며 "회계법인이 감사품질을 높여서 조직을 꾸리게 만들겠다. 대형과 중소형 법인사이에 이해상충 문제가 없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정 기업이 감사인 지정처분을 받을 경우, 금감원 내부기준에 따라 높은 점수를 받은 회계법인에게 감사인의 자격이 주어진다. 이 점수는 매년 3월 말일을 기준으로 소속공인회계사의 숫자와 경력, 국제적 회계법인과의 제휴 여부 등을 종합해 산출되는 방식이다.
다만 현행 시스템에서는 회계감사품질이 아닌 보유 회계사의 숫자를 위주로 점수를 산정해 공정하지 못하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특히 중소형 회계법인들은 감사품질에 있어선 자신 있지만 이 같은 점수산정 방식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다는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중소회계법인 대표는 "8년 전부터 지정감사를 신청했지만 한 번도 배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 뿐 만 아니라 대부분의 중소법인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금감원이 중소법인들에게도 배정되도록 정책적인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에 최 위원은 △감사 전담인력의 보유여부 △품질관리 시스템 확보여부 △전담 심리자 존재여부 등으로 감사품질을 측정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최진영 위원은 "현재는 회계사 머릿수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감사품질을 제대로 측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 "지정회사가 늘어난다면 현재와 같은 방법은 개선을 해서 회계법인도 그만큼 감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지를 측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