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이건희’ 대비 계열간 지분정리·승계 작업 진행
삼성그룹이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런 건강악화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 회장에 대한 ‘건강이상설’은 종종 재계에 입소문으로 떠돌았으나 삼성은 그때마다 ‘가벼운 감기’ 정도로 치부하며 소문을 일축하곤 했다.
이 회장은 출국 96일 만인 지난 17일 김포공항으로 입국하면서 팔을 흔들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계에 입소문으로 떠돌던 이 회장의 ‘건강이상설’은 심장수술 소식으로 더 이상 소문이 아닌 어느 정도 사실임을 입증하는 상황이 됐다.
삼성은 사업 지배구조 개편작업 가속화, 경영권 승계 임박 등 갖은 설이 나도는 가운데 이회장의 건강 문제가 그룹 경영과는 무관함을 강조하며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는데 분주한 모습이다.
◆ 미래전략실, 경영공백 최소화 기능
이 회장이 입원해 있는 동안은 물론 퇴원 후에도 일정기간 경영에 직접 나서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따라 삼성의 핵심 브레인인 미래전략실이 그룹 경영의 중추적 역할을 해나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 회장의 공백이 장기화 될 경우 계열사 중심의 독립경영체제가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삼성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도 그룹의 전체적인 사안만 미래전략실에서 조율하고 각 계열사의 경영은 각사가 책임을 지는 독립경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경영방식이 크게 변화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 회장의 ‘출근경영’이 멈춰지면서 삼성 마하경영의 속도감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우려감이 나오고 있으나 삼성은 이를 경계했다.
이준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 팀장(전무)은 “이 회장이 그동안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데다 개인 건강 때문에 입원한 것이기 때문에 (이 회장의 입원이) 경영과는 무관하다”며 평소대로 운영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무는 “평소 주최하는 회의를 제외하고 특별히 따라 마련된 회의는 없다”면서 “매주 열리는 ‘수요 사장단 회의’도 정상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2일 삼성전자 주가는 3.95%, 5만 3000원이 오른 138만 8000원에 장을 마감해 이 전무의 발언을 뒷받침 했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지난 9일 196조 6446억원에서 7조 8069억원 늘어난 204조 4515억원이 됐다.
◆ 이재용 부회장 활동범위 넓어지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건강 악화로 가장 주목을 받는 사람은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해외 출장중이던 이 부회장은 부친의 건강악화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 병원을 들러 이 회장의 상태를 확인한 뒤 회사에 나와 업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의의 회복되어 건강이 돌아온다 치더라도 출근 경영 등 종전과 같은 경영활동의 전면에 나서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이 회장의 곁에서 실무적인 부분을 챙겨온 이 부회장이 회사 경영 전반에 걸쳐 보폭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더불어 현재 진행 중인 그룹 사업구조 재편 작업의 속도고 더욱 빨라지고 경영권 승계 작업도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재계는 예상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올해 들어 해외 비즈니스 거래선 및 정재계 인사들과의 만남에 힘을 쏟는 등 글로벌 경영에 속도를 더해왔다. 지난 1월에는 미국 최대 통신사인 버라이즌의 로웰 매커덤 회장 초대로 미국에 다녀왔고 2월에는 중국 왕양汪洋) 부총리를 만나기 위해 베이징을 다녀왔다. 지난달 9일에는 중국 보아오포럼에 참석해 스마트폰을 이을 차세대 신수종 사업으로 의료와 헬스케어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같은 달 26일에는 이 회장을 대신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조찬에 참석해 삼성그룹의 수장 역할을 수행했다.
지난 1일에는 신종균 삼성전자 IM(IT·Mobile)부문 사장 등과 2주간의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 갤럭시 S5 판매 등을 점검하고 시스코, 버라이즌 등 해외 파트너들과 협력방안을 논의하다 이 회장의 입원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재계는 “올 들어 이 부회장이 빡빡한 해외일정을 소화하며 글로벌 경영, 인맥관리 등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이 부회장이 공식 후계자로서 전면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월스트리즈저널(WSJ)은 “올해 45세인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의 국제적인 얼굴로 애플곽 같은 기업들과의 거래를 중재해 왔다”며 “삼성은 이 부회장이 글로벌 재계 지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으며 고객사와 파트너십을 구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그룹 사업구조 개편 작업 가속화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변수’로 인해 삼성그룹이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사업구조 개편 작업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빠른 속도로 계열사 간 사업 조정과 지분 조정에 나서고 있다.
제일모직은 지난해 9월 패션사업을 에버랜드로 넘겨 소재전문기업으로 재탄생한 뒤 삼성SDI와 지난 3월 합병했다. 이에 따라 삼성 전자계열은 소재(제일모직) - 부품(삼성SDI) - 완제품(삼성전자)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또한,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합쳐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했던 화학계열사 정리에도 나섰다.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 간 불필요한 지분관계를 정리에도 나서 삼성전기,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카드 지분은 삼성생명이 매입했고 삼성전기, 삼성정밀화학, 제일기획, 삼성SDS가 갖고 있던 삼성생명 지분도 처분했다.
지난 8일에는 개인 최대 주주인 이 부회장을 비롯 이부진, 이서현 사장 등 세 자매가 모두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SDS를 연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SDS 상장으로 1조원대에 이르는 이 부회장의 그룹 승계 자금 확보의 길이 열린 것이다.
사업구조 개편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것은 이 회장의 건강 문제와 무관치 않은 것은 물론 후계 승계를 위한 작업이라는 분석이 재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회장이 건강 악화가 표면화되면서 금융과 건설 사업부문 조정과 지분정리 등 경영 승계를 위한 작업이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만들어 삼성전자 등 그룹 계열사들을 안정적으로 지배하는 동시에 이 회장 자녀 사이에 계열 분리를 가속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금융 게열사를 맡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건설·중화학,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이 패션·미디어를 각각 맡는 방향으로 정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근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마지막 작업으로 미래전략실 팀장급들을 삼성전자의 전면 배치를 완료, 사실상 삼성의 3세 경영권 승계 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