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담화 발표하는 박근혜 대통령(사진제공 : 청와대)
해경 전격 해체, 안행부 조직․기능 개편 선언
관피아 척결…퇴직공직자 취업제한 대폭 강화
민간인 공직채용 확대, '행정고시' 점진 폐지
시종 무거운 표정과 어투로 대국민 담화를 이어가던 박근혜 대통령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사연을 안고 세월호에 갇혀 깊은 바다 속에 잠긴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언급한 대통령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승객 또는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살신성인한 단원고 교사와 실종자 구조를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바다 속에 뛰어들었다가 유명을 달리한 민간 잠수사의 이름을 언급한 뒤 "이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얼굴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대통령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만큼 세월호 참사가 대한민국에 던진 충격파와 변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용광로처럼 뜨겁고 간절하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과 책임이 더 큰 법이다. 세월호 참사와 같이 지켜주어야 할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희생된 사고라면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도 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인내해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퍼진 병폐를 뜯어고치고, 두 번 다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전 국민이 힘과 의지를 모아야 할 때다.
□ 국민불신 키운 해경, 안행부…'환골탈태' 추진 = 사고 발생 34일 만에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박근혜 대통령은 생각지도 못했던 선언을 내놓았다. 미숙한 사고 대응으로 국민의 불신을 잔뜩 키운 해양경찰청을 전격 해체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안전행정부의 기능 중 '안전'을 떼어내 신설이 추진되는 국가안전처로 이관하고 인사 및 조직 기능도 총리 소속의 신설 부처인 행정혁신처로 이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안전행정부의 해체도 선언한 셈이다.
박 대통령의 구상대로 정부조직이 개편되면 '공룡부처' 안전행정부는 기능이 크게 축소, 행정자치 업무만을 담당하게 된다. 해경을 지휘 감독 해수부에서도 해양교통 관제센터(VTS)를 떼어내 국가안전처로 보내는 등 효율적인 국민안전 총괄 콘트롤 타워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박 대통령은 "안전관련 예산 사전협의권과 재해예방에 관한 특별교부세 배분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말했다. 신설되는 국가안전처에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국민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공약하고도 당선 이후 부실한 공약이행으로 세월호 사고 등 연이은 대형참사를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공직사회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조직정체성'을 직접적으로 건드렸다는 부분은 추후 조직개편 과정에서 해경과 안행부 등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참사 야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가시스템 개선을 추진 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官)피아' 척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세월호 참사 수사과정에서 이미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이라는 비정상적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민관유착은 비단 해운분야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수 십년 동안 쌓이고 지속되어 온 고질적 병폐"라고 규정한 뒤 강도높은 개혁으로 민관유착 고리를 끊어내겠다고 밝혔다.
가장 우선적으로 안전감독 업무, 이권 개입소지가 많은 인허가 규제 업무, 조달 업무와 직결되는 공직유관단체 기관장과 감사직에는 공무원 출신을 임명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현재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규정을 대폭 강화해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 대상기관 수를 3배 이상 확대키로 했다.
취업제한 기간도 퇴직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고위공무원의 경우 아예 퇴직 후 3년 동안은 소속 기관의 업무와 관련된 어떠한 업무도 재취업을 통해 하지 못하도록 고치겠다는 계획이다. 이들이 퇴직 후 10년 동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여부도 공개하는 '취업이력공시제도' 도입도 추진한다.
박 대통령은 "그 동안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관행과 제도를 고치는 개혁작업을 진행해 왔지만 이를 서두르지 못해 잘못된 관행들을 미리 끊어내지 못해 국민들에게 아픔을 드리게 된 것이 가슴에 큰 회한으로 남는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제시한 대안들의 '진행속도'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 세월호 참사가 몰고온 공직사회 격변의 '전조(前兆)' =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천하에 증명된 공직사회의 '무능'을 뜯어고치기 위한 핵폭탄급 대책도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공개됐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공직사회 개혁의 목표점은 '임용부터 퇴직까지 개방성과 전문성을 갖춘 공직사회'다.
우선 민간전문가들의 공직 진출 루트를 확대한다. 5급 공채(행정고시)와 민간경력자 채용을 5:5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공무원들의 '회전문 인사' 병폐를 안고 있는 과장급 이상 직위 민간 개방형 충원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중앙선발시험위원회'를 통해 선발, 수요가 발생한 각 부처에 내려보내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이는 '끼리끼리 문화'의 본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행정고시 제도의 폐지를 예고한 것과 다름없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과거 고시와 같이 한꺼번에 획일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이 아닌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는 체제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직사회의 한 문제점으로 지속 제기되어 왔던 순환보직제를 개선해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특히 신설되는 국가안전처 인력을 대국민 담화에 담은 대책에 맞게 구성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즉, 국가안전처는 박근혜 정부가 구축하고자 하는 새로운 공직사회의 '롤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금단의 열매 손 댄 대통령, 개혁 성공할까 = 실상 공직사회의 병폐는 과거 정권들이 알면서도 고치기를 주저한, '금단의 열매'나 다름없었다. 대통령 담화문에도 일부 언급이 됐지만 퇴직자 취업제한 제도, 민간 개방형 임용제도 등은 기능을 상실한 '껍데기 제도'에 불과했다.
공무원들이 만들고 공무원들의 손에서 운용되는 제도가 제대로 운용될 것이라 여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실제로 민간 개방형 임용을 통해 공무원 조직에 입성하더라도 '내부 시스템을 모른다', '조직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둥 공직사회가 치는 심리적 방어선에 막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하다 다시 민간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민간의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이는데 극도로 인색한 공직사회의 경직된 '인식'부터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박 대통령이 제시한 공직사회 개혁방안은 내실을 갖추지 못한 채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당시 도입된 획기적 인사제도라는 평가를 받았던 고위공무원단 제도가 공직사회에 쌓여 있는 구습에 발목잡혀 발전하지 못한 채 후퇴만 거듭해 왔다는 점도 반면교사 삼아야 할 대목이라는 분석이다.
현재로서는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어떠한 결론으로 귀결될 지 가늠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다만 정부 일각에서는 상당한 수준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가 공직사회에 던진 위기의식은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수준 이상으로 크다"며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여론의 지지를 튼튼히 받을 것이기 때문에 공직사회도 반발의 명분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반발할 힘을 모으기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