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감사 보수, 감사 품질 논란 부채질
지난해 이후 국회에서 논의 중인 회계법인의 비감사업무 금지 법안은 기업의 회계분식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회계법인이 외부감사를 맡은 기업으로부터 컨설팅이나 세무조정과 같은 부수업무를 수임할 경우, 독립성을 훼손하고 공정한 감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회계 업계에서는 컨설팅 수수료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법안이 시행되면 문을 닫게 될 정도의 타격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외부감사 서비스의 덤핑 경쟁이 업계 수익성에 타격을 줬고, 이 같은 행태가 회계법인들이 비감사업무에 목을 매게 된 배경이라고 꼽고 있다.
□ 대형 회계법인, 교육 등 업무 범위 점차 넓혀 = 공인회계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기식 의원은 지난해 한 공청회에서 "회계법인의 컨설팅 업무 발주로 인해 감사인의 피감법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는 감사인의 독립성과 외부감사의 품질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는 요소"라고 했다.
외부감사는 그 특성상 부실감사가 발생할 경우 피해가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품질이 중요하다. 하지만 회계법인이 감사 외 업무까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정작 본연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A회계법인이 그동안 10억원을 받고 회계사 30명을 투입해오던 외부감사를 8억원을 받는 대신 담당 회계사의 수를 24명으로 줄이는 식의 업무 방식을 택했다는 내용이다.
일단 덤핑으로 감사 계약을 따낸 후, 수익 보존을 위해 컨설팅이나 세무, 교육 등의 서비스를 계약 내용에 '패키지'로 끼워 넣고 이 업무에 직원 6명을 투입하는 방법이다. 이는 결국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외부감사 덤핑을 경쟁적으로 발생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대형 회계법인들이 회계관련 교육 용역을 수주하면서 논란이 된 적도 있다.
교육 용역의 경우 현행법상 대가성 없는 경우에 해당하고, 외부감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지만 회계법인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회계법인의 비감사업무가 늘면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온 것은 사실이다. 교육의 경우는 잉여 인력의 생산력을 제고할 수 있고 회계 분야 인재 양성이라는 좋은 측면도 있지만 컨설팅은 외부감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회계법인이 컨설팅 시장에 뛰어들면서 시장점유율을 조직적으로 늘려가고 수수료를 낮춰 증권사나 투자은행(IB)들이 손해를 입는다는 논란도 빚어졌다.
자기자본 상위의 한 증권사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엔론 사태 이후 대형 회계법인이 외부감사에 주력하고 컨설팅을 자제하도록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엔론 사태는 미국의 에너지회사가 2001년 파산하면서 재무제표가 가짜로 꾸며졌다는 사실이 들통난 사건. 당시 엔론의 회계감사를 맡은 유명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Arthur Andersen)은 문을 닫았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시장에 인수 합병(M&A) 매물이 많은 상황에서도 실제 컨설팅 성사율은 떨어지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 "결국 비현실적인 감사보수가 문제" = 회계법인들은 비감사업무를 금지시키는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하는 모습이다.
4대 회계법인 중 한 곳의 관계자는 "컨설팅 수수료가 수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만일 이것이 금지되면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형 회계법인들은 수익의 대부분을 컨설팅이나 세무조정 등 부수사업에 기대고 있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다.
또 다른 회계법인 관계자는 "(비감사업무를 금지할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컨설팅을 따로 수주해야 하는 비용이 발생한다"며 "기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컨설팅이나 세무조정도 더 잘할 수 있다"고 당위성을 주장했다.
외감 계약을 맺고 있는 회사에 대해 컨설팅업무를 막는 것은 사실상 '전면 금지'나 다름없는 조치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 회계사는 "회계사들이 매니저급이 되면서 영업을 시작하는데, 애초 외감 계약을 맺은 기업들에 감사업무와 패키지로 컨설팅이나 세무조정을 권유하는 경우가 보통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회계법인들의 비감사업무 수행은 턱없이 낮은 감사보수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박성환 한밭대학교 교수는 "비현실적인 감사보수가 문제다. 본연의 업무를 가지고 법인 유지가 안 되고 회계사들 월급을 못주는 상황이 되면 다른 사업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감사보수가 낮아진 것에 대해서는 회계법인들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자유수임제가 도입되면서 감사보수의 덤핑이 시작됐고, 이 같은 영업 형태가 회계사들을 비감사업무로 내몰리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시각이다.
박 교수는 "학계에서는 감사수임료 지급 목적의 기금을 만들고, 회사는 배정 받는 방법을 택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며 "지정제를 확대해서 감사인이 부당한 일을 겪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소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