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 지명자였던 김용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에 이어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이하 안 전 대법관)가 인사청문회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불명예 낙마하면서 박 대통령의 '법조인 중용' 인사철학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거물급 법조인들은 매년 자신의 재산내역을 공개해야 하고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등으로 임명되기 위해서는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특성상 높은 도덕성과 투철한 국가관, 업무자질 등 상대적으로 고도의 검증이 필요치 않은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안 전 대법관마저 낙마하면서 법조인 출신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잔뜩 부풀려졌다. 퇴직 후 받은 '전관예우' 때문이다. 이에 박근혜 정부의 인사검증시스템에도 허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재차 불거지고 있다.
비교적 신중한 인사스타일을 가진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었던 시절 초대 국무총리 인선을 할 때도 역대 대통령 당선인보다 늦게 인선을 하면서 정부 조직을 구성하는데 차질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후보자 검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김 후보자와 안 후보자는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자마자 전관예우 문제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각종 의혹들이 봇물처럼 터졌다.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이 언론의 취재보다 못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 법조인 선호, 집착인가? 적절한 선택인가? =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었던 시절부터 법조인 출신들을 중용하려는 성향을 보여왔다. '법치'를 강조한 측면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독재 등 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점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현 정부의 법조인 출신인사는 정홍원 국무총리,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황찬현 감사원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다.
실제로 이들은 비교적 무난하게 청문회를 통과했다. 이주영 장관의 경우에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라는 점에 더해 정치경력 등 정무적 감각까지 갖춘 적절한 인사라는 평가도 나왔다.
박 대통령이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법조인을 중용한다고 하기에 법조인은 엄격한 자기관리와 투철한 국가관,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역할 등 여러 면에서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청와대는 당초 법조인 출신만 중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고 관피아를 척결을 목표지점으로 한 대대적인 공직사회 개혁을 위해 법조인과 관료 출신은 배제하고 정치인을 물망에 올리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의 선택은 또 다시 법조인이었다.
안 전 대법관은 총리로 지명되자마자 대법관 임용을 위해 인사청문회를 거쳤고 매년 재산을 공개했던 것을 이유로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넘길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사법고시 동기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의 비리 수사하고 한나라당 대선자금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를 해 '국민검사'라는 별칭까지 얻은 안 후보자의 경우 세월호 사고로 인한 민심을 수습하고 관피아 척결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이었다.
□ 靑, 연이은 '헛발질' 왜? = 안 전 대법관의 낙마가 박 대통령의 법조인 중용 인사철학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퇴직 후 민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물급 법조인 출신들의 경우 전관예우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퇴직 법조인들이 전관예우를 통해 짧은 시간, 부를 축적한 것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많다는 점에서 인사검증시스템에 대한 변화 가능성도 주목되고 있다.
이 문제를 청와대가 인지하지 못했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전관예우 문제로 낙마한 고위공직 후보자 사례가 수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 이를 '흠결'로 여기지 않는 대통령과 인사에 관여한 핵심 참모들의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경험칙으로 잔뜩 높아진 국민정서법의 수위를 고려하지 않고 안 전 대법관의 '이미지'만으로 모든 것이 용인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을 토대로 그를 총리 후보로 밀어올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용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총리 후보자 지명 5일만에 낙마한 후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의원들과 오찬을 하면서 "후보자에 대한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이 제기되고 사적인 부분까지 공격하며 가족까지 검증하는데 이러면 좋은 인재들이 청문회가 두려워 공직을 맡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오찬에 참석한 한 의원은 "박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시스템에 대한 문제와 언론의 무리한 의혹제기가 총리 후보자 낙마의 이유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박 대통령이 김용준 사례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숙해진 국민들의 감정이나 눈높이를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던 것이 안 전 대법관까지 이어지면서 작금의 사태를 촉발시켰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