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국가개조를 추진하기 위해 오늘 새 국무총리를 내정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을 새 총리 후보에 내정할 당시 청와대의 공식 발언이다.
안 전 대법관의 총리 후보 지명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악화된 국민여론을 수습하기 위해 꺼내든 공직사회 개혁을 포함한 국가개조의 시발점이 될 인적쇄신의 첫 신호탄이었다.
내정 발표 당시만 해도 세월호 사고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공직사회의 적폐를 척결하는 등 국가개조의 사령탑을 맡게 될 적임자로 비쳐졌다. 안 전 대법관 역시 내정 발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헌법이 명한 대로 대통령을 충실히 보좌해 대통령이 여러 차례 밝힌 국가개조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제는 '공염불(空念佛)'이 되고 말았다. 안 전 대법관이 전관예우 논란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28일 후보직을 내려놨기 때문이다. 후보지명 불과 6일 만이다.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척결하겠다던 각오로 등장한 구원투수는 거대한 상처만 입은 채 씁쓸히 퇴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9일 대국민담화에서 국가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관피아' 청산을 포함한 공직사회 혁신이 핵심 골자였다.
소신 있는 원칙주의자라는 평을 받았던 안 전 대법관이 기용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16대 대선과정에서 불법대선 자금과 대통령 측근비리를 단호히 척결한 전력을 계기로 '국민검사'라는 신망을 받아온 안 후보자를 국가적폐 척결과 국가개조를 이룰 수 있는 적합한 인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후보직 사퇴라는 불명예스러운 선택으로 인해 박 대통령의 국가대개조 구상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첫 단추부터 제대로 어그러졌다.
앞서 박 대통령은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교육·사회·문화를 총괄하는 부총리 신설을 지시했다. 국가개조 차원에서 인사시스템 대수술을 감행한데 이어 국가안전처와 인사혁신처 신설로 기존의 17부3처17청을 17부5처15청으로 바꾸며 정부체계 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 전 대법관이 관료출신들의 병폐인 전관예우 논란에 휩쓸려 총리 후보직에서 내려오면서 6·4 지방선거를 전후한 내각과 청와대 개편 등의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인적쇄신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특히 국정 공백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총리의 경우 세월호 수습에만 주력하면서 제한된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현 정부의 내각을 이끌 조타수가 상실된 상황이다.
총리를 시작으로 순차 단행될 것으로 전망됐던 개각은 일정 자체가 통째로 뒤로 밀려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개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정부 부처 수장들이 부처를 장악하고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악재가 발생, 공직사회 분위기도 뒤숭숭한 모습이다.
문제는 총리 인선과 개각 등 박 대통령의 국가개조 기조를 현실화시킬 새로운 인물들의 기용이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개편 대상 부처들의 반발여론이 뭉쳐져 조직개편에 차질을 줄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인사와 조직 기능 모두를 국가안전처로 이관하기로 했던 안전행정부의 경우 조직 기능을 남기는 방향으로 방침에 선회, '밀실구상' 논란 및 안전행정부의 로비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형편이다.
안 전 대법관의 불명예 낙마가 가져온 후폭풍은 상당 기간 동안 박근혜 정권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