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이하 안 전 대법관)가 후보 지명 엿새만인 지난 28일 저녁, 자진 사퇴했다. 총리 후보 지명자가 인사청문회를 하기도 전에 스스로 물러난 사례는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김용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이후 벌써 두 번째다.
언론들의 날카로운 검증 칼날에 벗겨진 '안대희'라는 인물은 '국민검사'라는 최고의 별칭으로 불리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각광받던 그 인물이 아니었다.
전관예우를 통한 부(富) 축적, 아들의 병역면제 등 고위공직후보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인 '도덕성'과 직결되는 의혹들을 안고 있는 인물이었다. 국민검사 이미지가 이 같은 의혹들을 가리고 있었을 뿐이다.
차라리 그가 국민검사로 불리지 않았다면 그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전격적인 사퇴가 국민들에게 던진 충격파는 조금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잘 된 일로 치부할 수도 없지만 그의 사퇴에 아쉬움이 그닥 크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그의 사퇴로 인해 느껴지는 불안한 기운은 무엇 때문일가.
'전관예우 받을 생각 없었다'는 국민검사의 해괴한 변명
그의 사퇴가 아쉽지 않은 이유는 그가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사퇴의 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며 공직시절 전관예우를 해 본적 없었기 때문에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전관예우라는 오해와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행동 하나 하나에 조심했다"고 말했다.
안 전 대법관은 지난해 변호사 개업을 한 후 5개월 동안 활동하며 16억원의 수임료 소득을 얻은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문제는 그가 이 같은 수임료 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원천을 '전관예우'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사퇴의 변에서 증명됐다. 그는 전관예우를 해 본 적 없기 때문에 받을 생각이 없었던 사람이었다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다.
만약 그가 국민검사가 아니고, 대법관을 지내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변호사 개업 5개월만에 16억원을 수임료로 벌어들일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법조 시장의 규모가 크고 경쟁이 허술하지 않다.
근 10년 전부터 법조 시장은 시장 참여자들의 '어렵다'는 호소로 가득차 있었다. 급격히 늘어나는 공급(변호사 수)을 충당할 만큼의 수요가 발생하지 않아 동업자 정신마저 상실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신규 개업 변호사들 중 상당수가 사무실 유지 비용도 대지 못할 정도로 허덕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가 국민검사로 불렸고, 대법관을 지내고 퇴임한 '특급 전관예우' 대상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 소득을 그 짧은 시간에 벌어들일 수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런데도 '전관예우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는 그의 말은 자신이 받은 것이 전관예우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 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부피를 키우기는 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전관예우 문제가 '개혁과제'로 여론 재판대를 오르내렸다. 더군다나 전관예우는 전현직 판검사들의 결탁에서 파생된 용어다. 전관예우를 해 본 적 없고, 받을 생각 없었다는 그의 해명이 궁색하게 들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차라리 전관예우를 받았다고 고백한 뒤 국민들에게 머리를 숙였다면,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 아쉬운 감정이 조금은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국민검사는 전관예우를 받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며 국민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선택을 했다.
불안감의 원인, '김용준'은 아무런 교훈이 되지 못했나
지난해 2월, 김용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박근혜 정부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하지만 그는 고작 닷새만에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그 또한 안 전 대법관 부럽지 않을 정도의 명성을 얻고 있던 강직한 법관 출신이었다.
김 전 위원장 총리 후보로 지명, 언론검증대에 오르기 전 까지 그가 부동산 투기, 병역특혜 등 전형적인 권력층 비리 의혹을 안고 있는 인물이었을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작심하고 달려든 언론들의 파상공세에 지팡이에 의지하며 사회적 약자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고목은 허무하게 쓰러졌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과오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없이 '휙' 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다시 시간을 현재로 돌려보자.
수 많은 정보와 축적한 정보 이상의 새로운 정보를 수집할 인력과 시스템을 갖춘 청와대가 과연 안 전 대법관이 안고 있던 '휘발성' 높은 문제들을 몰랐던 것일까.
결코 몰랐을리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사검증 과정에서 김 전 위원장 문제와 유사한 사항들이 검증대상이 될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만큼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에는 하자가 없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작금의 상황을 만든 원인은 인사검증 과정에서 노정된 문제점들을 '결격사유'로 여기지 않은 인사권자의 인식 때문이라는 결론이 얻어진다.
비단 김용준 전 위원장 뿐만이 아니었다. 출범 이후 1년4개월 동안 수 차례에 걸쳐 박근혜 대통령이 골라 잡은 '패(고위공직자 후보)'들이 크고 작은 의혹들에 휩싸여 '꽝'이 됐다.
작금의 사태는 경험칙이 쌓이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수준으로까지 올라선 국민정서의 성숙도를 감안하지 않은 인사권자의 시대착오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김용준 전 위원장을 포함한 여러 차례의 실패경험은 인사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무런 교훈을 남겨주지 못한 것이다.
안 전 대법관 사퇴를 보며 느낀 불안감의 실체는 바로 이 것이다.
혹시나 안 전 대법관의 사례도 교훈으로 남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 현실과는 동 떨어진 눈높이를 가진 인사권자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터지는 대형참사의 원인이 된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 보다 더 무서운 대통령의 '인사(人事) 안전불감증' 이 더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