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는 말이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하얀 도화지에 무엇을 그려넣어야 할 지 고민부터 하게 만드는 어려운 작업이다.
FTA 중소기업 컨설팅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FTA중소기업 컨설팅 사업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 속에서 남을 도와줘야 하는 일이었다.
내 앞길도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는데, 남을 도와주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서울세관 윤전희 관세행정관(사진)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인증수출자 인증심사와 현장방문 컨설팅 뿐만 아니라 인증전문교육 강사로까지 나서게 됐다.
윤 행정관은 10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인터뷰에서 "초창기 FTA 업무는 아직 조직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한·EU FTA가 발효되면서 업무를 맡게 됐다. 수출담당자 입장에서는 백지상태에서 FTA 업무를 맡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느 누구도 컨설팅 사업 경험이 없다 보니 인증수출자 지정을 원하는 중소기업과 이러한 중소기업을 도와 줄 컨설턴트를 모집하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혔다"며 "모집이 안 되서 사업을 시작도 못 하는게 아닐까하는 걱정에 잠을 설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포기했다면…오늘날 FTA 혜택은 없었을 것" = 한·EU FTA가 발효되던 2011년 7월. 당시에는 관세청 FTA 조직이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담당자들도 FTA 업무를 해보지 않아 무엇을 어떻게 할지 우왕좌왕하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대기업도 아닌 FTA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녹록치 않은 일이었지만 윤 행정관은 포기하지 않고 FTA 활용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관세청 최초로 중소기업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누구도 경험이 없어서인지 모든 일을 혼자해야 했던 윤 행정관은 계획부터 차근차근 세우고 중소기업 모집공고를 한 후, 세관의 FTA 인력을 총동원해 수출실적이 있는 업체에 일일이 전화하며 적극적으로 참여를 유도했다.
상담을 받은 업체뿐만 아니라 상담을 해 줄 컨설턴트 모집을 위해 한국관세사회 등에도 연락을 취하는 등 고군부투한 결과 중소기업 400개사, 컨설턴트 120명의 참여의사를 받고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었다. 컨설턴트는 업체와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서류준비가 안된다고 하고 인증심사직원은 인증신청서류가 부실하다고 하소연하면서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윤 행정관은 "그럴 때마다 직원들과 컨설턴트들을 어루고 달랬고 서류 준비가 왜 중요한지를 알리며 부실한 서류는 보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며 "덕분에 6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컨설팅 사업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업시행 결과, 3억원 정도의 투자비용으로 중소기업 287개사가 컨설팅을 완료했고 2012년도 한 해 동안 FTA를 활용한 수출성과가 2195억원에 달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중소기업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시작은 힘들었지만 윤 행정관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기에 오늘날 중소기업들이 FTA 혜택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FTA 눈높이 교육으로 어려움 해결" = FTA 업무의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할 즈음 다른 어려움이 윤 행정관을 찾아왔다.
지난 2012년부터 인증심사업무를 시작하면서 업체들이 이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문의할 때마다 개별적으로 안내를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FTA가 무엇인지, 인증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원산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민원인들의 고민도 무시할 수 없었다. 업체 원산지관리전담자 입장에서는 담당업무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FTA 업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들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윤 행정관은 'FTA 상설교육'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전국세관 최초로 인증실무교육을 마련했고 FTA와 관련된 업무종사자를 대상으로 월2회 무료교육을 실시했다.
단순히 법령을 알려주는 데에서 벗어나 실무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도록 교재를 발간하고 FTA에 대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수입이나 수출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윤 행정관은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은 FTA 용어를 잘 몰라도 신용장은 매우 잘 알고 있으므로 신용장과 내국신용장을 빗대어 설명했다"며 "공무원 생활을 하기 전 5년간의 중소기업 무역실무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 교육이 도화선이 되면서 지금은 서울세관을 비롯한 전국 본부세관에 'FTA 상설교육센터'를 개설하게 됐으며 현재 FTA 인증과 검증, 활용 전반에 걸쳐 무료교육을 실시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 "'역지사지' 새기는 세관공무원 될 것" = 윤 행정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이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 내 생각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안 될 것이 없다고 늘 생각하며 민원인들을 대한다고 한다.
윤 행정관이 충주세관에 근무하던 시절, 충주, 제천지역은 고추 도매상이 많았지만 대부분 1인 기업이어서 이러한 유통이력신고 제도를 알지 못해 신고 자체가 미진했다.
유통이력신고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관세행정 위험기반 컨설팅'을 계획해 해당업체를 찾아다니며 유통이력신고를 도왔는데 왜 신고를 안했는지 따지기 보다는 불평사항을 들으면서 먼저 공감을 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도매상들이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값진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윤 행정관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떤 제도를 집행하기 전에 고객의 소리를 먼저 듣고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해 서로 공감할 때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며 "앞으로도 관세행정 고객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세관공무원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