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최근 아시아 지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며 가스시장 선점에 공을 들이고 있어 앞으로 남북 가스관 건설 사업이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러시아는 극동·시베리아 지역의 천연가스를 북한을 거치는 가스관을 통해 한국에 직접 공급하는 남·북·러 가스관 건설 계획을 진작 세웠지만 그동안 별 진전이 없었다.
이 계획은 2008년 한국가스공사와 러시아 가스프롬이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논의가 시작됐지만 북한 핵실험 등 돌발 변수 탓에 북측의 협조 없이는 안정적인 공급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추진 동력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경제개발에 목 마른 북한이 평양과 모스크바를 잇는 관광열차를 추진하고 양국 국경지대를 잇는 다리 건설을 제안하는 등 최근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에 힘을 쏟고 있어 남북 가스관 건설이 다시금 관심을 끄는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4월 북한에 대한 채무를 대부분 탕감해주고 상환액 중 일부를 남북 가스관 사업에 재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특히 러시아가 주요 가스 수출시장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지난 16일 러시아가 '만성 체불'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선불제로 바꾸고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우크라이나를 관통하는 가스관으로 러시아로부터 전체 가스 수요의 약 30%를 수입하는 유럽연합(EU)에 빨간 불이 켜졌다.
반면 중국과 10년 넘게 끌어온 대규모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전격적으로 타결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체결한 이 계약으로 2018년부터 중국에 연간 38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게 됐다. 이는 연간 중국 가스 소비량의 23%에 달하는 양이다.
정확한 공급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가스 공급량과 전체 계약 규모를 토대로 1천㎥당 350달러 수준으로 추정됐다. 이는 유럽에 대한 러시아 평균 가스 공급가인 380달러보다 낮으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제시한 가격의 70% 수준에 불과하다.
러시아와 중국이 가스 공급 가격을 놓고 10여년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을 고려하면 아시아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는 러시아가 중국에 적지 않은 양보를 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러시아의 이 같은 '동진(東進)' 경향은 최근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가스 생산 증가에 따른 가스 독점력 약화, EU의 경제 제재로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위기감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우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가 10여년간 끌어온 중국과의 협상을 마무리한 것은 세계적으로 가스 생산이 늘면서 최근 들어 러시아의 협상력이 떨어진 탓도 있다"며 "아시아 가스 시장을 선점하려는 러시아의 움직임은 그간 주춤했던 남북 가스관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