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정 조달의 첨병(尖兵)역할을 맡고 있는 일선 세무서 직원들이 '악성민원'으로 인한 고충에 시달리고 있다.
본·지방청에서만 근무하던 국세청 직원이 일선 현장에 왔을 때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민원을 상대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악성민원에 대한 일선 직원들의 '공포심'은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세청이 아무리 서비스기관으로 거듭나보려 애쓴다지만 국세청의 본 업무는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는 일. 납세자와의 마찰은 국세청이 영원히 안고 가야할 숙제나 다름없다.
최근 경기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생계가 어려운 민원인들의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것이 일선 직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아울러 세월호 침몰사고는 공무원에 대한 신뢰도 함께 침몰시켰다.
한 일선 직원은 "최근 전화를 조금 늦게 받았더니 한 민원인이 '공무원이 이렇게 일을 안 하니 세월호 사고가 터진 것 아니냐'는 질책과 함께 혀를 찼다"며 "세월호 사고 이후 민원인들로부터 이 같은 말을 종종 듣는데, 억울하지만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 "난 한 세무서만 노린다"…연일 '신문고' 울려대는 민원인 = 서월지역 A세무서에는 국민의 불만사항을 인터넷으로 듣는 '국민신문고'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민원인이 있다.
A세무서 직원에 따르면 지금까지 그가 국민신문고에 올린 글만 1만 여개. 그가 국민신문고에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수년전 부과된 세금에 대한 불만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A세무서 한 직원은 "재산세에 대한 불만을 품고 그때부터 민원글을 올리기 시작했다"며 "글만 올리는 게 아니라 세무서에 직접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찾아오고, 본인이 못 오는 날엔 부인이 세무서에 대신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원글을 처리하는 전담마크 직원을 둘 정도"라며 "본·지방청에서도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민원인이라 거의 포기상태"라고 전했다.
일선 직원에 따르면 국민신문고에 불만글이 올라오면 일선 세무서는 본·지방청에 해당 사건에 대한 소명을 하고 댓글을 달아야 한다.
한 일선 세무서 직원은 "민원인의 입장에선 억울함을 금할 길이 없겠지만 '반복성 민원'은 직원의 본 업무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며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 "세금? 쉽게는 못내지!" =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세무서 직원들을 골탕 먹이는 납세자들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B세무서에 따르면 최근 한 체납자는 체납에 따른 재산압류를 이유로 체납액 300만원을 모조리 동전으로 바꿔 세무서에 세금을 납부했다(사진 위).
체납자는 세무서 직원들을 고생시키기 위해 은행에서 동전을 일부러 여러 종류로 교환해 왔으며, B세무서 직원들은 체납자 앞에서 일일이 동전을 분류하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체납자는 가산금 붙은 것에 불만을 품고 수표로 체납세액을 내면서 배서란에 온갖 낙서를 하기도 했다(사진 아래). 납세에 대한 반발심을 이 같은 기형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몇몇 납세자 때문에 애먼 세무서 직원들의 고충이 늘고 있는 것이다.
B세무서장은 "직원들에게 체납정리 실적을 올리라고 독려해야 하는데 납세자가 이런 식으로 나오니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전했다.
□ 전화민원 '막말' 극심…스트레스의 근원 = 민원실에 찾아와 목소리를 높이는 민원인들은 그나마 '양반'이라는 직원도 있다. 진짜 악성민원은 전화민원에 있다는 의미로 내뱉은 말이다.
그는 "내방 민원인은 그래도 직원과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하고 주변에 보는 사람도 많다보니 격양된 심정으로 왔어도 차츰 누그러지기 마련인데 전화민원은 욕설에, 막말에 답이 없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신고기간에는 전화가 끊이지 않기 때문에 70%정도 밖에 민원처리를 못하는데 전화를 못 받는 것에 대한 반발이 심하다"며 "또한 꼭 욕설을 하지 않더라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민원인을 상대하다보면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세무서 직원이 아닌 세무서에서 국방의 의무를 하는 주차장 공익근무요원도 내방 납세자들의 거침없는 막말에 심적 타격을 입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일선 세무서 직원은 "신고기간엔 아무래도 주차장이 혼잡해질 수밖에 없는데 주차요원이 통제를 하려고 하면 '니가 뭔데 막아서냐' '왜 복장을 갖춰 입지 않았느냐'는 등 꼬투리를 잡아 욕설을 퍼 붓는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세무서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다른 업무를 보는 이를 통제하려다 공익요원을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이미 사고 난 차량을 세무서에 끌고 온 뒤 세무서에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선 직원은 "세무서에서 악성민원 등 불법행위 대응을 위해 녹취를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지만, 세금에 대한 기본적인 반발심과 국민의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직원들도 사람인데 납세자들이 조금 넓은 마음으로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