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도움되는 만큼 적격요건 까다로워 ‘조심’
오래된 맛집이라 해서 찾아가보면 “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 툴툴거리는 단골의 불만을 가끔씩 듣는다. 선대가 몇십년 간 음식점을 경영하다가 후대에게 물려준 사이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후대는 굳이 음식점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니 맛이 덜할 수 밖에 없다. 말이 좋아 가업승계지 진정한 가업승계는 아니다.
일본을 보자. 2002년 조사결과 150만개 대상기업 중 창업 후 100년 지난 업체가 1만5200개를 넘었다. 소규모 점포까지 감안하면 그 수는 능히 10만개를 넘으리라. 거기에는 9대에 걸쳐 290년간 이쑤시개를 만든 사루야, 1615년 창업된 손수건회사 다이코큐야, 1860년대 창업된 별사탕회사 료쿠쥬안 시미즈로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누대에 걸쳐 쌓인 노하우를 토대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 왔다. 오늘날 일본경제의 초석을 다졌다는 자긍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거기에 자극 받은 것일까? 우리 세법도 가업승계에 특혜를 준다.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의 가업승계를 위한 주식증여에 대한 특례, 창업자금 증여에 대한 특례와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법)의 가업상속공제가 그것이다.
조특법상 증여세 특례는 일시적 유예
가업승계를 위한 주식증여특례는 가업이 유망하여 계속 영위코자 할 때, 창업자금증여특례는 사양가업을 유망업종으로 전환시키려 할 때 쓰임이 있다. 어느 경우이든 수증액(30억원 한도)에서 5억원을 뺀 금액에 최저세율(10%)을 곱한 금액을 증여세로 납부하면 된다.
그러나 이 수증자산은 기간제한 없이 증여자 사망시 상속세과세가액에 합산되어 누진세율로 몽땅 과세된다. 일시적 과세유예에 불과한 것이다. 상속세과세 기준이 과거 수증 당시 시가로 평가돼 세금이 적어질 가능성을 제외하면 실익은 크지 않다.
상증법의 가업상속공제는 항구적
반면 가업상속공제는 항구적이다. 혜택의 폭도 커서 가업승계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 가업상속공제는 앞서 증여세과세특례가 적용된 경우에도 허용된다. 가업승계를 위해 주식이나 창업자금을 증여한 부모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면 수증가액 전부가 상속재산에 합산되나, 최대 500억원을 가업상속공제액으로 빼준다. 최고세율이 50%이므로 최대 250억원까지 상속세가 줄어든다.
특혜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기 마련이다. 가업상속공제도 그렇다. 보통 상속의 경우 피상속인이 무엇을 했건 상속세만 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가업상속공제라는 특혜가 주어지려면, 가업을 위해 피상속인은 무엇을 했고 상속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상속당사자 요건)를 따진다. 상속될 가업의 요건도 엄하다. 거기에다 가업이 상속된 후 가업으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사후관리도 엄격하다.
피상속인과 상속인 적격요건
피상속인의 적격요건은 3가지로 요약된다. ①피상속인이 대표이사(개인사업체는 대표자)로 재직한 기간이 가업영위기간의 50% 이상이어야 한다. ②상속인이 피상속인으로부터 대표이사를 승계, 상속개시일까지 계속 재직했으면 피상속인의 재직기간요건은 ‘가업영위기간 중 10년 이상’으로 줄어든다. ③피상속인이 상속개시일 직전 10년 중 5년 이상을 대표이사로 재직한 경우에도 재직기간요건은 갖춰진다.
예를들어 피상속인이 30년간 가업 영위 후 사망한 경우를 보자. 피상속인이 30년의 50%인 15년 이상 또는 최근 10년 중 5년 이상을 대표이사로 재직했어야 한다. 상속인이 대표이사를 승계, 상속개시일까지 계속 재직했으면 피상속인의 재직기간 10년 이상이면 된다.
반면 상속인은 다음 요건 전부를 갖춰야 한다. 가업을 이어갈 사람의 요건이 훨씬 까다롭게 정한 것이다. 상속인은 ①상속개시일 현재 18세 이상이어야 하고 ②상속개시 전 2년 이상 직접 가업에 종사해야 한다. ③상속인 1인이 가업재산 전부(타 상속인에게 반환된 유류분 제외)를 상속받고 ④그 1인이 상속세신고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하고 신고기한으로부터 2년 이내에 대표이사에 취임해야 한다.
상속인 1인의 배우자가 위 요건 ①, ②와 ④를 갖춘 상태에서 그 상속인이 가업재산 전부를 상속받은 경우에도 적격요건은 갖춰진다. 상속인의 배우자는 상속권이 없어 요건 ③은 못 갖춘다. 그러나 상속인의 아내나 남편이 똑똑해서 피상속인이 생전에 가업에 종사시켜온 경우도 왕왕 있다. 이를 감안, 상속인이 ‘전부상속’ 요건 ③을 갖추고 아내나 남편이 요건 ①, ②와 ④를 갖추면 되도록 적격요건이 완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전부상속’ 요건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피상속인이 가업에만 몰두한 채 가업과 무관한 재산에 투자하지 않았다면 가업재산이 상속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다른 상속재산은 거의 없다. 그 경우 가업상속공제를 받기 위하여는 다른 상속인이 유류분 외의 재산상속을 포기해야 한다. 특히 가업승계가 어려운 피상속인의 부인이나 딸은 꼼짝없이 피해를 본다. 상속인간 공평이나 양성 평등이 문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업기업의 적격요건
‘가업’이란 상속개시일이 속한 과세연도의 직전 과세연도 말 현재 조특법상 중소기업(규모확대 등으로 중소기업에 해당되지 않게 된 연 매출액 3천억원 미만 기업 포함)으로서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 경영한 기업을 말한다. 법인가업의 경우에는 피상속인과 그 특수관계인의 주식을 합하여 발행주식 총수의 50%(상장법인이면 30%) 이상을 계속 보유했을 것도 적격요건의 하나로 추가된다.
적격요건 충족시 가업상속공제
상속당사자와 가업기업의 적격요건을 갖추면 가업상속재산가액에 상당하는 금액과 200억원(한도액) 중 적은 금액이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공제된다. 한도액은 피상속인의 가업 계속 경영기간이 15년 이상 20년 미만이면 300억원으로, 20년 이상이면 500억원으로 대폭 늘어난다.
여기서 ‘가업상속재산’은 가업에 직접 사용된 사업용 고정자산을 말한다. 법인가업인 경우 그 주식 평가가액에 ‘사업용자산(업무무관자산 등 비사업용 제외)가액/총자산가액’의 비율을 곱한 금액을 ‘가업상속재산’으로 본다.
상속 후에도 적격요건 유지해야
상속개시일부터 10년 이내에 다음 경우가 생기면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미 공제된 가업상속공제액 중 일정액을 상속개시 당시의 과세가액에 산입하여 상속세를 부과한다. 가업상속공제의 악용을 막으려 함이다.
△상속개시 후 5년 이내에 가업용자산의 10% 이상, 10년 이내에 20% 이상을 처분한 경우 △상속인이 대표이사로 종사하지 않거나 가업의 주된 업종이 완전히 변경된 경우 △가업을 1년 이상 휴·폐업한 경우에는 가업의 계속성이 인정될 수 없어 상속세가 추징된다.
가업상속재산인 주식을 상속받은 상속인의 지분비율이 떨어진 경우(상속주식 물납으로 지분이 감소했거나 합병된 경우 등 제외)에도 마찬가지다. 각 과세연도의 정규직근로자 수의 평균이 상속개시 과세연도의 직전 2개과세연도의 정규직근로자 수 평균(기준고용인원)의 80%에 미달되는 경우에도 상속세가 추징된다.
상속개시 과세연도 말부터 10년간 정규직근로자 수의 전체평균이 기준고용인원의 100%(중소기업에 해당하지 않게 된 경우 120%)에 미달한 경우도 같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재산을 상속인이 매각한 경우 양도차익은 양도대가에서 피상속인의 취득당시 취득가액을 뺀 금액으로 한다. 가업상속공제액만큼이 상속세 과표는 물론 양도세 과표에서도 빠지는 이중혜택을 막기 위함이다. 2014년 1월 1일 이후 상속받아 양도하는 분부터 적용된다.
중소기업은 국가산업의 기반이다. 영국·독일·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폭넓게 가업승계를 지원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장수가업이 양산될 수 있도록 가업승계세제의 지속적 개선을 기대해 본다.공동집필 김주석 변호사·박부영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