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개방에 성난 농심…익산 들판서 논 갈아엎어

일제수탈 역사의 현장 100년 만에 또다시 '아픔'

 

"오죽했으면 논을 갈아엎겠어요? 농민과 농사는 안중에 없는 정부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29일 오전 전북 익산시 춘포면 덕실리 들판.

4천㎡의 논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소속 농민들이 수확을 얼마 앞두지 않은 논을 트랙터 2개로 갈아엎었다.

3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들이 끔찍이도 아꼈던 논을 갈아엎는 이유는 정부가 대책 없이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위한 관세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정부 발표를 '한국 농정의 참사'로 규정하며 마지막 결의로 논을 갈아엎었다.

춘포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픔과 맞닿는다.

일본강점기 춘포역을 통해 익산의 쌀이 군산으로 이동했고 농사를 짓기 위한 물자가 들어왔다. 당시 들이 넓다고 큰 대(大), 마당 장(場)자를 써서 일본인들이 대장촌이라고 이름붙였다.

사례는 다르지만 100여년 만에 다시 돌아온 '못 가진 자들의 아픔'에 농민들은 할 말을 잃고 먼 곳만 바라봤다.

트랙터가 논에 들어서자 지난 봄부터 정성을 쏟아온 논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너덜너덜하게 뭉개졌다.

논 임대인은 "자기 농사를 제 손으로 망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정부 입장은 돈도 안 되고 표도 안 되는 농민은 이제 조용히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풍요로워야 할 논이 갈아엎어지자 현장을 지켜보던 농민들도 안타까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일부 농민은 벼를 산 채로 매장하는 '불경스러운 일'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했고, 일부는 수확의 감사기도 대신해 투쟁가를 목청 높여 외쳤다.

이들에게 쌀은 더는 농촌의 자존심이 아니고, 논도 더이상 믿음이 아니었다.

조상규 전농 전북도연맹 의장은 "몇 달 뒤 수확할 벼를 갈아엎어야 하는 우리는 오장육부가 끊어지는 고통과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국가의 식량주권이 달린 문제를 20년간 관세화 유예를 받았다는 이유로 아무 조건 없이 전면 개방한 것은 농민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마지막 싸움이라는 마음으로 식량주권과 농민의 생존권을 지키고자 논을 갈아엎는다"며 "수입 개방에 맞서 강력한 투쟁으로 농민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