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세·감면제도를 둘러싼 정부와 국회의 폭주가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도 비과세·감면 정비를 통한 복지재원 마련이라는 당초 계획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다 시도 때도 없이 정부에 복지재원 마련 타령을 늘어놓던 정치권은 한 술 더 떠 정부가 축소할 계획을 가진 비과세·감면를 그대로 밀고 가자는 법안을 남발하고 있다.
□ '초심' 잃은(?) 정부 = 기획재정부는 최근 2014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올해 일몰 예정인 비과세·감면 항목 정비계획을 공개했다.
당초 정부는 박근혜 정부 5년 임기 동안 비과세·감면을 혁신적으로 정비, 총 18조원의 재원을 조달해 복지정책 재원으로 쓸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공개된 올해 정비계획에 따르면 일몰 예정 53개 항목 중 6개만을 계획대로 종료시키고, 나머지 47개 항목은 현행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일부 제도의 경우 재설계를 통해 불필요한 조세지원 소지를 막아 세수확대의 발판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지만 재원확보 정책의 큰 흐름에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은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2기 경제팀의 '확장적 재정운용' 기조가 반영되면서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경력단절여성 채용 세액공제 등 새로운 비과세·감면 항목을 도입한다는 것이 기재부의 방침이다.
각 비과세·감면 항목들이 정책적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폐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조세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문제는 정부가 이를 복지재원 조달의 견인차로 선택하는 무리수를 둔 부분이다.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얼키고 설켜 꼬여 풀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가 폐지하거나 조정하려 했던 일부 비과세·감면 제도가 국회 논의과정에서 방향이 바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당초 계획대로 차질없이 비과세·감면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비과세·감면 정비(18조원)는 애초 2013년까지 15조3000억원, 2014~2015년에 2조7000억원을 세법 개정을 통해 조달할 계획이었다"며 "2013년까지 세법개정으로 14조4000억원(소득세 최고세율 과표구간 조정 효과 포함시 16조원) 달성했고, 이에 따라 목표(2조7000억원) 중 일부(4000억원)를 조달, 내년까지 차질 없이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정부의 뜻과는 다르다.
서울시립대 박기백 교수는 "애초부터 비과세·감면 정비로 18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일몰기한이 대부분 연장된 이번 세법개정안으로 인해 더욱 확실해 졌으며, 정부가 노력은 하겠지만 세입목표 달성은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재원 타령할때는 언제고…날뛰는 정치권 = 문제는 정치권이다. 여야 가리지 않고 비과세·감면 제도 연장을 골자로 한 입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재설계를 통해 정비하겠다는 제도를 원안 그대로 연장하는 방안을 내놓는 등 엇박자 행보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틈만 나면 정부에 복지재원 마련 방책을 내놓으라며 타박하면서 정작 정부의 재원마련을 위한 정책방향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타는, 정치권의 '두얼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세법개정안이 발표된 지난 6일을 전후해 무려 9개에 달하는 비과세·감면 일몰연장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지난 4일 새정치민주연합 윤호중 의원은 비영리법인의 수익사업에서 발생한 소득을 고유목적사업준비금으로 손금에 산입 할 수 있는 적용기한을 2017년말까지 늘리는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튿날인 5일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영농자녀 증여세 감면제도를 2017년말까지 연장하자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6일에는 농어촌주택 취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 특례제도 3년 연장 법안을 국회에 연이어 제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부좌현 의원은 6일 정부 세법개정안과 마찬가지로 기업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할 시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혜택을 3년 더 연장해 주자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7일 윤호중 의원은 중고차에 대한 부가가치세 매입세액공제를 2017년말까지 연장하자는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는 이번 정부 세법개정안(3년 연장, 단계적 공제율 축소)에 반영된 사안이기도 하다.
8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이 직장보육시설의 취득세·재산세 감면기한을 3년 더 연장하는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아울러, 오 의원은 최근 화두가 된 세금우대종합저축 가입 시한 역시 2017년까지 연장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세제한특례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했다.
이는 세금우대종합저축을 내년에 폐지한다는 정부의 세법개정안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법안이라 향후 정부와 야당의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 의원은 11일에도 중소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전환 직원 1명당 10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를 2017년까지 3년 연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대표발의 하기도했다.
이처럼 여·야를 막론, 하루가 멀다시피 일몰 연장 법안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국회 논의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방어력을 발휘할지 미지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세전문가는 "표심을 먹고 사는 정치권의 생리상 '선심성 입법안'을 제출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노릇"이라며 "비과세·감면 정비가 어려운 이유는 제도 이해관계자 때문이 아니라 표를 의식한 정치권 때문인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