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간의 한국방문일정을 마치고 18일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대한항공 전세기가 이륙하자 교황은 한국 상공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다시 한 번 기도드리며 여러분 모두에게 신의 축복을 기원한다”고 마지막 메시지를 띄웠다.
희망의 손길로 가장 낮은 곳을 보듬은 교황의 행보는 한국 천주교신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겼다. ‘약자의 편’인 교황을 뵙자며 가는 곳마다 구름인파가 모여들고, 교황만 보면 어린애처럼 순수해지고 행복해지면서 저도 모르게 ‘비바 파파’(교황만세)를 외쳐댔다.
교황은 자신의 트위터에 총 7건의 한국어로 된 글을 남겼고, 수 천에서 수 만 건의 리트위트에다 해당 글을 관심글로 등록한 이들도 수 천명에 달했다. 교황관련 인터넷 카페가 생겨나고, 교황 관련 서적과 스티커 티셔츠 등의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교황 신드롬’ ‘교황 앓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세월호 참사에다 군병사 구타사망사건, 끝이 안 보이는 정쟁에 좌절했던 국민들은 교황의 미소와 따사한 손길에서 모처럼 위로를 받는 모습들이었다.
교황은 진정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갈 줄 아는 지도자였다. 지도자 부재 시대에 교황의 리더십에 대리만족하며 국민들은 요 며칠 동안 행복했다.
이제 교황은 돌아갔지만 그 울림이 워낙 커 ‘교황 앓이’는 좀체 가시지 않을 것 같다. 그가 우리 모두에게 던진 메시지와 화두가 하나같이 엄중하고, 소통과 화해를 통한 실천으로 화답해야하는 과제를 우리 모두가 떠안았기 때문이다.
교황은 ‘세월호 피로감’을 드러내며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정치권에 ‘세월호 불씨’를 되살려놓았다. 교황의 ‘세월호 사랑’은 각별했다. 가슴에 노란리본을 달고, 세월호의 아픔을 잊고자 하는 우리에게 교황은 무려 6번이나 유가족들을 어루만지며 그 참사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한국을 떠나면서 10명의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따로 위로의 편지도 띄웠다. 이보다 더 명확하고 강렬한 메시지가 어디 있겠는가.
참사 직후에는 모든 것을 뜯어 고칠 듯 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특별법 제정마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해 유가족들은 기댈 곳을 잃은 상태였다.
“한 명 한 명 손을 잡아주시고 안아주셨는데 정말 감동이었다. 우리의 대통령이, 정치권이 해 줘야할 위로를 교황이 대신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고 유가족들은 울먹이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해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교황의 메시지에 우리의 정치권이 답을 해야 할 차례다.
그는 분단의 땅, 갈등하는 현실에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세계화로 조각난 분열의 상처를 연대의 실천으로 치유하라는 권고도 남겼다.
그의 방한으로 가난한 이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목소리를 빼앗겼던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우리의 주목을 받았다. 세월호 유족들을 비롯해 강정마을 주민, 쌍용차 해고 노동자, 밀양 송전탑 주민,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들이었다. 교황이 떠나갔다고 이들도 또 다시 잊혀 져야 할 것인가.
교황 방한의 직접적 목적은 순교자들의 시복과 아시아 청년대회 참가였다. 그럼에도 그를 통해 순교자들이 찾았던 새로운 세계, 그들이 목숨 바쳐 이루고자 했던 평화와 정의가 흐르는 세상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소통과 대화의 의미를 새삼 우리에게 일깨웠다. 남북화해를 위한 특별미사에서 남한과 북한이 ‘의심과 대결의 사고방식’을 청산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것을 촉구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다. 정의를 실현하려면 과거의 불의를 잊지 않되 용서와 관용, 협력으로 불의를 극복해야한다”는 교황의 ‘평화·정의론’은 대립과 반목의 길로 치닫고 있는 남북한 모두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지금 남북한 모두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상호믿음을 쌓아가는 일이며 상대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대화는 독백에 불과하다는 경고는 주목을 요한다. 대북외교는 물론 과거사문제를 둘러싼 대일외교의 교착상태를 풀어가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교가 자국의 이익만을 관철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공동선을 위한 정의로운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지적은 작금의 동아시아 정세에 적확한 키워드로 받아들여진다.
교황은 취임 이후 “자본주의의 새로운 독재가 가난과 약자의 죽음과 경제적 불평등을 일상화한다”며 자본의 세계화에 부단한 경고를 발해왔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기를 기도한다”고 천명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고 공동선과 진보, 발전에 사람중심의 문화를 주문했다.
그는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 평화와 정의, 약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연대(連帶)의 세계화’를 역설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가난한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를 촉구했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한국은 부유한 국가가 됐지만 “막대한 부(富) 옆에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있고, 노인 인구의 절반가량이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등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은 우리를 머쓱케 한다.
그는 양(평신도)들에게는 온화하면서도, 목자(성직자)들게는 매우 단호했다. 부자로 살아가는 수도자는 위선으로 신자들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라는 말씀은 종교지도자뿐 아니라 모든 사회 지도자들이 가슴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고, 교황 방한이 종교 간 화합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낳았다.
교황은 전세계 10억 천주교도의 수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존경받는 세계 지도자로 그의 메시지는 종교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게 돼있다. 한국에 와 그는 실천과 행동으로 할 말을 쏟아냈고, “나는 할 말을 다했으니 당신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우리 정부와 정치권, 지식인, 교회, 젊은이들에게 골고루 화두를 던졌다. 그에 대한 화답은 우리 몫이다.
‘비바 파파 신드롬’이 한 순간의 신기루에 그친다면 기댈 곳 없는 우리사회 약자들과 국민들의 ‘교황앓이’는 두고두고 지속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