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파격적인 인사가 단행됐다.
모두의 예상을 깬, 발탁인사를 통해 비고시 출신(7급 공채) 국세청 차장이 탄생됐다.
이번 인사의 최고 하이라이트가 비추는 자리에 선 인물은 김봉래 신임 국세청 차장(이하 김 차장)이다.1987년 국세청 차장으로 근무했던 추경석 전 국세청장 이후 무려 27년만에 비고시 출신 차장 인선으로 오랜 시간 굳어왔던 행시 출신 차장 인선 관행을 무너뜨렸다.
출신 지역과 임용구분을 가리지 않고 능력과 평판을 중심으로 인사를 단행하겠다고 선언한 임환수 국세청장이 내놓은 첫 작품부터 신선한 충격을 몰고 온 셈.
당초 국세청 안팎에서는 '대세론'을 장악한 행시 출신 후보자가 존재했다. 누구도 김 차장의 이름 석 자가 이번 인사명단 제일 꼭대기에 올라갈 줄은 생각지 않은 모습이 역력했다. 능력과 평판 측면에서 부족함을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지만, 그동안의 국세청 인사 관행에 기초해 굳어진 인식이 틈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비고시 출신 대거 '중용' = 임환수 국세청장 취임 후 처음 단행된 1급(고위공무원 가급) 인사는 유사 케이스를 찾아보기 힘든 인사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그동안 고위직 인사에서 '데코레이션' 역할에 머물던(?) 비고시 출신들이 대거 중용, 지방국세청장급 라인업 자체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것이다.
국세청 차장을 포함한 지방국세청장급 자리는 총 7자리. 이 가운데 1급 자리가 4개(차장, 서울국세청장, 중부국세청장, 부산국세청장)이고 2급(고위공무원 나급) 자리는 3개다.
이번 인사를 통해 차장(김봉래)과 부산국세청장(원정희) 자리에 비고시 출신이 인선되면서 유임된 이학영 중부국세청장, 안동범 대전국세청장, 강형원 대구국세청장 등 모두 5개 자리가 비고시 출신들로 채워졌다.
군사정권이 종식된 이후 30년 이상 지나오면서 이 정도로 비고시 출신들이 요직에 대거 등용된 경우는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도 행시 출신들이 알토란 같은 기관장 자리를 사실상 독식하면서 국세청 내부의 '인사불평등'이라는 균열도 이번 인사를 통해 어느 정도 메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기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현재만 놓고 보면 국세청 인사기조의 '대변혁'이 일어났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
임 국세청장이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자신의 '인사철학'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분석과 함께 하위직 출신들도 능력만 있다면 충분히 고위직까지 진출할 수 있다는 확실한 시그널을 조직 전체에 내려보냈다는 긍정적 평가가 국세청 내부에 확산되고 있는 모습이다.
일부 불만의 목소리도 존재할 수 있지만 단 한 방의 인사로 국세청 조직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비고시 출신들의 민심을 휘어잡은 '신의 한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 국세청 차장 '김봉래' = 단순히 비고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김봉래 신임 국세청 차장이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김 차장은 능력도 능력이지만 조직 내외부의 '평판' 측면에서 거의 무결점에 가까운 인물이다.
최근에는 이런 경향이 급속히 퇴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세공무원들은 직급이 올라가면서 일정한 '라인'을 형성한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즉 '누구의 사람'으로 분류, 그 누구의 흥망에 따라 운명을 같이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 차장은 여기서 한참을 비껴서 있는 인물로 알려져있다.
소위 '적(適)'이 없는 사람을 분류됐고 실제로 백용호 전 국세청장~김덕중 전 국세청장 시절 세원정보과장, 운영지원과장, 서울국세청 조사1국장 등 단 한 번도 밀려난 적 없이 요직에 중용됐다. 가까운 과거 김영기 전 국세청 조사국장이 유사한 케이스였을 뿐, 이 같은 케이스를 더 찾기란 불가능하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행시 출신이든 비고시 출신이든 고위직들의 경우 능력 측면에서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고 이야기 한다.
즉 김 차장의 인선은 김 차장이 국세공무원 생활을 하며 부지불식간에 쌓아 올린 '평판'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강한 카리스마로 '강성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임 국세청장의 곁에서 강성 이미지를 상쇄시키는 균형추 역할을 하며 조직을 이끌어 나갈 최적의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군' 출신 한계를 박살내다 = 올해 초 원정희 신임 부산국세청장이 본청 조사국장으로 인선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군특채(10기) 출신으로는 넘볼 수 없었던 자리에 그가 중용됐기 때문이다. 본청 조사국장에 등용되면서 국세청 사람들은 원 부산국세청장의 다음 행보에 주목했다.
이번 인사를 통해 다시 한번 군특채 출신들에게 결코 허락되지 않았던 1급에 올라서면서 역사를 썼다.
국세청 안팎에는 암암리에 군특채 출신들은 1급이 될 수 없다, 는 인식이 굳어져 있었다. 이 인식을 일거에 무너뜨린 원 부산국세청장은 본인이 쓴 역사를 그대로 종식시킬 인물이기도 하다. 원 부산국세청장이 군특채 마지막 기수이기 때문이다.
한편 김연근 부산국세청장이 새롭게 서울국세청장으로 인선되면서, 당초 임 국세청장 취임을 전후해 대대적인 '쇄신인사' 단행을 점쳤던 예상들은 모두 엇나가게 됐다. 김덕중 전 국세청장이 지난해 말 인선한 지방국세청장 라인업을 사실상 그대로 유지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당장 대폭적인 인사를 단행하기에는 인재풀이 다소 애매했고, 연말 외부파견 교체인사 등 상당폭의 인사가 필요한 요인들이 즐비해 이번에는 인사폭을 작게 가져갔다는 후문이다. 이에 3개월여 뒤인 연말 태풍 수준의 전면적인 인사가 단행될 공산이 커졌다.
이와 함께 '호남' 출신들이 이번 인사를 통해서도 1급 자리에 중용되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인사를 통해 국세청 차장 및 지방국세청장급 7자리 중 4명이 영남(TK-2명, PK-2명), 2명이 서울경기, 1명이 호남 출신으로 배치됐다. 1급 4자리로 범위를 좁히면 영남이 3명(TK-1명, PK-2명), 서울경기가 1명이다.
임 국세청장이 지역 등을 초월한 탕평인사 원칙을 전면에 내세운 점을 고려할 때 '호남소외론'이 불거지지 말라는 법이 없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