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2시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쟁점과 평가' 세미나에서 민세진 동국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외이사 임기 단축·임원후보추천위…전문성 의심, 관치 우려
"보이지 않는 규제, 창구 규제로 작용할 것"
최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대한 전문가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4일 오후 2시 한국경제연구원의 주최로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 쟁점과 평가'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나선 민세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비롯해 패널로 참석한 토론자들도 모범규준의 문제를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정부가 제2의 KB사태를 막기 위해 모범규준을 발표했는데, KB사태는 지난 2010년 최고경영진 간의 갈등으로 불거진 신한은행 사태와 닮아 있다"면서 "경영진에 대한 주주의 견제가 부족해 내부 경영진 간의 승계와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 것인데, 주주의 견제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외이사 임기를 줄이는 등의 미온적인 조치로는 제2의 KB사태를 막는데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 사외이사 임기 단축, 전문성 의구심 더 커져=민 교수는 먼저 금융회사는 사외이사가 중심이지만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미흡하고 전문성이 낮은데도 자기 권력화하고 있는 것으로 정부가 진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최고경영자(CEO) 승계 문제는 승계를 책임지는 명확한 주체가 없어 벌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민 교수는 이사회가 견제와 균형이 미흡하고 전문성이 낮은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되면서 정부 주도로 사외이사 비중이 확대됐기 때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실적으로 한정된 인력 pool 안에서 늘어나는 사외이사를 결격사유로 고려해 충원하다보니 특정 직업군에 편중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민 교수는 금융위가 처방으로 모범규준에 담은 사외이사 임기 축소에 대해 크게 비판했다.
민 교수는 "전문성 부족을 지적받고 있는 사외이사들의 임기를 2년에서 1년을 줄이면 더욱 전문성에 의구심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사외이사의 직업군이 흩어진다고 해도 견제 기능과 전문성이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했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법 제382조 제1항에 따르면 사내·외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총회에서 진행돼야 하는데 모범규준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자만이 주주총회에서 선임될 수 있다고 규정해 상법을 침해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또 "모범규준에서 독립성을 사외이사 자격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임기가 단축되면 연임에 대한 욕구가 더 증대되므로 독립성 유지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 원칙이 모범규준에 명시돼 있는데 다양성에 대한 해석이 잘못됐다"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전문성이 있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 임원후보추천위원회, '관치' 심화 가능성?=민 교수는 금융회사 임원을 선임하기 위한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신설 요구는 CEO의 인사권을 제한하고, 정치권의 개입이나 정부 입김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비난했다.
최근 전국은행연합회장과 우리은행장 선임과 관련해 '관치'가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임원을 신임하게 되면 관치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원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도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신설과 관련해 "주주가치 극대화는 결국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는 동력이 되므로, 이해관계자의 책임을 기초로 한 모범규준은 국내 비은행금융권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범규준에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와 타 기관과의 관계 설정이 규정돼 있지 않고 이사회와는 독립된 기관으로 설계돼 있다"며 "충분한 수의 사외이사를 포함해야 한다는 규정도 결국 사외이사가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총수의 과반으로 해석하게 될 것이므로 주주가 아닌 사외이사 뜻대로 CEO가 결정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모범규준의 강제성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모범규준의 효력에 대해 "가이드라인인 모범규준이 사실상 강제성을 갖게 될 것"이라며 "모범규준을 이행하지 못하는 회사는 연차보고서를 통해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소명을 하라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규제"라고 지적했다.
권태신 원장은 "모범규준이 법적효력이 없는 행정지도라고는 하지만 금융당국의 경직적인 관리방식대로라면 결국 보이지 않는 규제, 창구 규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