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다수보다 입을 여는 소수가 더 시끄러운 법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입법 과정은 이 입을 여는, 즉 '떠드는' 소수들에 의해 좌우되는 케이스가 더러 있다. 여론이라는 명분을 확보하지 못한 불완전한 입법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올해 세법개정 과정에서도 이 같은 케이스가 생겼다.
올해 정기국회 세법개정 논의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종교인 과세였다.
종교인 과세는 2012년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민개세주의'를 말하며 본격적으로 도입이 시도됐다. 이후 2013년 정부에 의해 세법개정안에 포함됐으나 종교인들의 반발, 그리고 이를 지나치게(?) 의식한 일부 국회의원들의 동조로 무산됐다.
정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올해 2월 정부는 종교인들의 소득을 사례금, 기타소득으로 분류하지 않고 따로 '종교인 소득'으로 분류, 원천징수를 자발적 납세로 대신하는 한편 근로장려금 대상에 종교인을 포함하는 등 큰 양보를 했다.
이정도 통 큰 양보를 할 만큼 정부는 종교인 과세 도입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최선이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나왔다. 적어도 국회의원들이 너무도 뻔했을(?) 종교인들의 의견을 더 들어보자며 간담회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난 11월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불교, 천주교, 개신교인들을 초청해 국회 식당에서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거기서 무슨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간담회 종료 직후부터 조세소위 의원들은 종교인 과세에 대해 전부 입을 닫아버렸다.
도대체 이 간담회에서 무슨 말들이 오고갔던 것일까.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종교계는 '종교전쟁을 하자는 것이냐, (총선에서)여론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등 협박에 가까운 발언들을 쏟아냈다고 전해진다.
여기까지.
이 정도면 왜 국회의원들이 입을 닫았는지 답은 뻔하다.
며칠 후 예산부수법안 여야 수정동의안을 만들고 나온 새정치민주연합 윤호중 의원(기재위 간사)는 종교인 과세가 결국 물건너가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인 뒤 "그렇다"고 시인했다.
종교인 38여만명 중 80%는 면세점 이하로 알려져 있다. 종교인 과세로 인해 소득이 노출되고 세금을 더 내야하는 이들은 총 7만6000여명 가량으로 전체 종교인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이 내야 하는 세금은 정부안대로 할 경우 200억원 정도로 추산되지만, 예산정책처는 개신교 교직자 8만777명에 대해 근로장려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연간 737억1100만원의 세수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종교인 전체로 보면 제도 도입으로 인해 얻는 이득이 더 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가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1일까지 이틀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종교인 과제 도입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75.3%가 '조세형평성 차원에서 종교인에게도 과세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반면 14.4%는 '봉사 활동 등 자율성을 감안해 과세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10.3%는 '잘 모름'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런 점들을 미루어봤을 때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들의 특성상 종교인 과세 법안은 통과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싶지만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라고 설명한다.
100명으로 구성된 A라는 집단이 100억원의 로비를 해 특정 법안을 통과시켜 1000억원의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자. 이들은 1인당 1억원씩을 들여 10억원의 이득을 얻기 때문에 로비를 해 법안을 통과시킬 유인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1000만명의 국민이 있다고 할 때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거나 직접 행동에 나서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들을 저지함으로써 얻는 1인당 금액은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행동을 부추길만큼 크지 않고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법안 통과로 인한 사회적 비효율을 '합리적으로'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과세대상으로 판단되는 7만6000명의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충분한 동기가 부여된 반면, 이들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떠드는 소수'는 올해도 납세의 의무에서 빠져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