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非)예산부수법안', 국회서 이대로 잠드나

조세범처벌법, 세무사법 등 임시국회서 재논의 안갯속

국회 바닥에서 잠들어 있는 세법개정안(비예산부수법안)이 좀처럼 일어날 생각이 없다. 국세징수법, 조세범처벌법, 세무사법 등 처리해야 할 법안이 산적해 있지만, 국회 상임위원회 가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직접적인 세수(稅收)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에서 국회 본회의 문턱도 밟지 못했지만, 공평과세 측면이나 대외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성이 담겨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세정책 추진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될 법안들이다.

국회의 법안처리 의지가 어느 정도냐가 관건이겠으나, 현재까지 여야 모두 국회 논의테이블로 가져갈 생각이 없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연내처리는 사실상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12월 임시국회가 다음달 14일까지 가동된다는 점에서 법안처리 불가 판정을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非예산부수법안 '계류' =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국제징수법, 조세범처벌법, 조세범처벌절차법, 관세사, 세무사, 자유무역협정의 이행을 위한 관세법의 특례에 관한 법률, 교통에너지환경세법 등 7개 법안(정부안, 의원입법안 제외)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이들 법안은 공평과세 기반을 확립하거나 세원투명성을 높인다는 방향성 아래 설계됐다.

구체적으로 국세징수법 개정안은 개업공인중개사를 통해 임대인의 미납국세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체납 관련 과세관청의 질문·검사 대상에 '체납자의 재산을 은닉한 혐의가 있는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도 포함시켰다.

또 조세범처벌법의 경우 조세범에 대한 공소시효를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며, 명의대여행위 처벌대상에 명의대여 행위한 자와 제공한 자에 더해 명의대여 행위 등을 하도록 선동하거나 교사한 자를 포함시키도록 했다. 이 밖에 세무사업계에 대한 '규제완화' 측면에서 추진되는 법안(세무사 개업·폐업 시 신고의무 폐지 등)도 있다.

현재까지 국회 벽을 넘은 세법개정안은 8개(국세기본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부가가치세법, 개별소비세법, 조세특례제한법,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관세법)다. 나라살림(예산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이유때문에서다.

바꿔 말해 세수와 관련이 없는 법안은 상대적으로 논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셈이다.  

실제 지난달 세법 심의과정에서 여야 간 큰 이견 없이 잠정 합의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비예산부수법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 "예산안 통과됐으니…", 미온적인 국회 = 문제는 세법을 논의해야 할 상임위 기능이 마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임시국회를 통해 다시 한 번 논의를 거쳐 국회통과를 시키겠다는 방침이지만, 여야 모두 계류 세법 논의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단 기재위 조세소위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다.

가장 시급한 현안이었던 예산안 처리가 이뤄짐으로서 당장 처리가 급하지 않을 뿐더러, 기재위 쟁점 사안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에 비해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조세소위 소속 야당 관계자는 "비예산부수법안 중 쟁점으로 삼을만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며 "아직 조세소위뿐만 아니라 기재위 개회 여부조차 언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비예산부수법안이 올해 다뤄질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같은 당 다른 관계자도 "비예산부수법안은 별로 쟁점이 없는 분위기다. 서비스 관련법 등 경제재정소위에서 다뤄질 것들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 추진에 힘을 실어주리라 믿었던 여당마저 저자세를 취하고 있다. 

조세소위 소속 여당 관계자는 "아직 기재위 전체회의 일정조차 잡힌 것이 없다"며 "간사들끼리 연락하며 일정을 조율중이지만 어떻게 될지 미지수다"고 말했다. 

같은 당 다른 관계자도 "비예산부수법안에는 급한 쟁점이 없다. 이번 임시국회를 시작한 지 이틀밖에 안됐기 때문에 조세소위나 경제재정소위를 열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안에 비예산부수법안들이 처리되는 것은 힘들 것 같다"고 전했다.

□ 세제실 1년 농사 흉작 '위기'…"국회 설득 매진 할 것" = 자칫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1년 농사나 다름없는 세법개정안이 반쪽짜리 정책으로 남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매년 세법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목소리가 들릴 만큼, 세제실 사람들에게는 세법개정안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정부는 세법 논의를 임시국회 때 재차 끌어내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여야의 다소 느긋한 자세 때문에 현실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세법을 재차 손질하랴 국회를 설득하랴 이래저래 '부담백배'인 상황인 것이다. 

세제실 관계자는 "이미 지난 회기에서 합의를 봤던 사안이기 때문에 임시국회 때 상정만 되면 국회통과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정책효과에 대한 설명도 중요하지만, 국회를 설득하는 작업에 매진해 임시국회 때 상정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세법 논의가 지지부진해짐에 따라 이달 말 발표 예정인 세법개정안의 후속 시행령 작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된 세법개정안의 경우 시행령 작업에 착수하고 있으나, 아직 국회 벽을 넘지 못한 법안의 경우에는 작업에 더딜 수밖에 없는 노릇.

세제실 관계자는 "현재 비예산부수법안으로 분류된 세법에 대해서도 시행령 작업을 착수하고 있지만, 국회통과가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답답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