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에도, 해머에도 끄떡없다. 깨지기 쉬운 것이 유리라지만, 각고의 노력에도 깨지지 않는 이 방탄 유리는 좀 다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유리천장으로 막혀 있다. 정부의 각종 규제 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코스피는 지난 4년 동안 2000포인트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코스피가 급락, 1800포인트 후반까지 떨어졌다가 2000선에서 오를 듯 하며 오르지 않아 투자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코스피의 움직임이 이러한 이유는 '미국의 테이퍼링(tapering) 종료'에 따른 자금 이탈과 유가 하락, 러시아 루블화 가치 하락 등 연일 터지는 대외 악재 탓이다.
그러나 2011년 이후 코스피가 지루한 박스권에 계속해서 갇혀 있는 것이 단지 외풍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기업들 실적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업 이익은 2010년 85조7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4년 동안 감소 혹은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락 추이는 올해에도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투톱,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의 부진이 총 기업 실적을 깎아먹고 있다. 연초 삼성전자 기업 이익증가율 추정치는 약 30%였으나 지금은 10%대로 낮아진 상황이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의 3분기 실적은 매출액 21조2804억원, 영업이익 1조6487억원으로 영업이익률 7.7%를 기록하며 시장기대치인 9%를 하회했다. 더군다나 지난 9월 서울 삼성동의 한전 부지를 10조5000억원이라는 고가에 낙찰 받은 이후 투자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의 내실 부족으로 턴어라운드가 기대됐던 소재와 산업재 업종의 회복도 더디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중심의 투자는 이익을 보장한다'는 공식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반면 밸류에이션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가가 계속 상승하고 있는 이유는 기업 이익의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이후 국가별 주가상승률은 이익증가율의 방향과 같다.
바야흐로 '쩌리짱' 종목이 시장을 주도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쩌리짱이란 김치 겉절이에 비유하는 주식시장 은어로, 쉽게 말해 위상이 크지 않은 기업 중 우수한 종목을 지칭한다.
올해 국내에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업종과 기업은 쩌리장이었다. 시가총액 비중이 작아서 시장의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업종, 예를 들면 화장품, 의류 업종 등이다.
또 동일한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이 하나이거나 소수여서 특정 업종에 속하지 못했던 종목, 예를 들어 호텔신라와 같은 종목이 선전했다.
내년, 금융당국이 새롭게 시행하는 정책들도 '겉절이'로 외면받던 이들 종목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르면 내년 4월부터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상·하한가 가격제한폭이 현행 15%에서 30%로 확대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가격제한폭을 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가격제한폭 확대로 소형주와 공모주 투자의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지만, 기업에 대한 평가가 즉각 반영되며 쩌리짱 종목에 자금 수혈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가 규제를 없애고 기업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을 고민하는 이유는 기업의 실적만이 한국 경제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쩌리짱이 2015년에는 한국 경제의 유리천장을 깨줄 수 있을지 시장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