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없는 복지, 세출 구조조정과 지하경제 양성화로 재원마련, 복지행정 개혁으로 재원확보….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내놓았던 핵심공약들이지만 집권 3년차로 접어든 현재 이 공약들은 청와대는 물론 정부, 심지어 언론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과거의 조각이 되어 버렸다.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 현재까지 불과 3년의 시간이었지만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달라졌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의 수준으로 변화했다.
증세없는 복지를 외치더니만, 국민건강 증진을 명분으로 담배에 붙는 조세와 준조세 등을 하루아침에 2000원이나 올려놓는 '쿠데타'에 가까운 정책을 관철시키는 한편 비과세·감면 축소를 간판으로 내세워 기업과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세금혜택을 야금야금 줄였다.
대기업·대자산가, 고소득 자영업자 등 탈세유인이 높은 계층에 대한 현미경 감시를 통해 검은 돈의 흐름을 차단해 숨은 세원을 발굴하겠다는 방침 또한 인프라 확충(FIU법 개정 등)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세출 구조조정을 하겠다더니, 경제활성화를 위해 왕창 빚을 내 세출을 늘렸고(2014년 예산 355조8000억원, 2015년 예산 376조원 - 전년비 20조2000억원 증액) 국면전환을 위한(?) 방책으로 해묵은 과제인 공무원연금 개혁을 재차 꺼내 들었다.
'특별사면권 제한'이라는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도 잊었는지 경제부처 고관대작들은 경제활성화를 앞세워 감옥에 가 있는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을 운운하고 있다.
도대체 지난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정부의 경제정책 스탠스가 완전히 달라진 것일까. 이 같은 경제정책 기조의 변화를 가져온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하나가 존재한다.
'돈'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돈, 즉 '세수(稅收)'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 예금자 박근혜, -20조원 짜리 '마이너스 통장' = 증세없는 복지는 박근혜 대통령을 대선승리로 이끈 결정적 견인차였다.
2012년 대선 당시 '부유층 증세'를 통한 복지재원 마련을 공약했던 상대후보(문재인 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와의 격차를 벌릴 수 있었던 부분이 '증세'의 유무였다. 증세를 하지 않고 5년 동안 130조원 이상의 추가재원을 마련해 복지에 쏟아붓겠다는 공약은 제대로 먹혔다.
구체적으로 박 대통령은 예산 절감 및 세출 구조조정으로 71조원,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 등 세제개편으로 48조원, 복지행정 개혁으로 10조6000억원, 기타 재정수입 증대로 5조원 등 총 134조5000억원의 추가 세수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연 평균 27조원의 추가세수를 만들겠다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집권 첫 해부터 완전히 어그러졌다.
2013년 8조5000억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하는 참담한 결과가 빚어졌다. 지난해의 경우 확정적 수치가 도출되지 않았지만 10조원 이상의 세수결손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미 전망 수준을 넘어선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의 통장에는 이미 20조원에 육박하는 마이너스 금액이 찍힌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현 시점에서 이 어마어마한 마이너스 금액을 없애거나 줄일만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추가재원 공약은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 점점 더 커지는 세수 '구멍' = 대규모 세수결손의 원인을 '페이퍼(Paper)'에 찾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최고의 두뇌들이 모였다는 기획재정부가 내놓는 세수전망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근사치에 가깝게 작성된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경기침체'가 세수부족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세수결손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경제정책이 시장에 먹힐 수준의 정교함을 갖지 못했다는 결론이 얻어진다. 전방위적인 경제활성화 체제로 전환되기 전까지 중심이 됐던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2013년 8조5000억원 세수결손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해 정부가 잡은 세입예산(국세+관세)은 총 216조5000억원. 1월~10월 기간 동안의 누적세수는 전체 세입예산 대비 82.1%(세수진도율)에 불과한 177조6000억원에 그쳤다. 세수진도율이 직전년 동기 대비 5.3%p 낮았다.
2013년 수준을 뛰어넘는 세수결손은 기정사실이 된 셈이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1월~10월 세수진도율을 토대로 추산한 세수결손 폭은 13조원에 육박했다. 사상 유례가 없다는 표현조차도 아까운, 엄청난 규모다.
정부가 잡은 올해 세입예산은 전년대비 5조원 이상 늘어난 221조5000억원이다. 세수결손폭을 10조원이라고 잡는다고 해도 지난해에 비해 19조원을 더 채워야 달성이 가능한 수치다. 정부는 경제만 활성화되면 이 수치를 만들어 내는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 경제 어느 구석을 돌아봐도, 정부의 판단에 신뢰를 가질만한 요인은 보이지 않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 3년 연속 세수결손, '현실'이다 = 박근혜 정부는 집권 첫 해 '마른 수건을 쥐어 짠다'는 원색적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세수확보에 열을 올렸다.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내면서 이는 정책선회를 강제하는 부담으로 돌아왔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대형 악재를 만나면서 그나마 살아날 만했던 경기의 풀이 죽자, 정부는 경제팀을 전격 교체하는 등 '경제활성화'로 경제정책의 방향타를 완전히 틀었다. 특히 정부는 '빚'을 내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 올해 세출예산을 대폭 확장했다.
정부가 돈을 풀어 시장의 움직임을 원활히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경제를 살려놓고 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필두로 한 경제팀의 벼랑 끝 승부수다. 이 마저도 실패한다면, 퇴로가 없어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경환 경제팀의 행보에 대한 우려를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재정 조기집행, 부동산 경기 활성화 등 여러 카드를 가지고 나왔음에도 201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대규모 세수결손 사태를 피하지 못한 상황에서 확장적 재정운용 카드 등 최경환 경제팀의 정책이 일시적 효과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
내수부진이 고착화되면서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 법인세 수입이 감소하고 환율과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관세 수입과 부가가치세 수입이 감소하는 등 정부의 개입으로 여건을 반전시키기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에 쓸 돈이 없어 빚을 내 국가재정을 운영하는 마당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복지공약 추진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약속한 세출 구조조정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원 부족 문제가 최악의 카드나 다름없는 전면 증세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재원 정책기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돈 주머니(국고)'부터 제대로 채운 뒤 복지 등을 재논의하는 것이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에 걸 맞는 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