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2015년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굳히느냐 한국형 장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느냐는 위태로운 길림 길에 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산업계 금융계 정치권 등 각계 인사 1500여 명이 참석한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지난 70년 기적의 역사 위에 새로운 70년 희망의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며 올해가 경제 재도약의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을 갖고 성장의 기틀을 다져나가겠다고 말했다.
4대개혁으로 일컫는 구조개혁과 경제 활성화, 그리고 가계부채와 환율안정 등 대내외 리스크관리가 올해 경제운용의 3대 키워드다. 하나하나가 벅찬 과업이고, 실행과정에서 서로 모순되거나 충돌도 예상된다.
경제체질을 개선해 장기 저성장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구조개혁이 필수적이다. 그러면서도 경기회복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해서는 재정․금융확대를 통한 단기적인 경제 활성화 대책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구조개혁의 성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데 반해 개혁과정에서 단기적으로 경제침체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연금개혁과 정규직의 고용유연화는 미래소득에 대한 불안을 안기며 단기적으로 소비를 비롯한 내수 침체를 가중시킬 수 있다.
반대로 경제 활성화에 집착해 부동산투기나 가계부채를 조장하고 규제완화와 투자활성화 쪽으로 정책역량을 집중시키면 장기적인 구조개혁은 물 건너간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재도약의 골든타임'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올해 한국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결코 녹녹치가 않다. 장기저성장에 디플레이션, 급증하는 가계부채, 환율전쟁과 신흥국 불안 등이 난마처럼 얽혀있다. 이주열 한국은행총재는 신년사에서 "2015년은 과거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경기회복세가 거의 멈춰있는 상황에서 물가도 크게 떨어지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하락하며 경제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현상이다.
물가상승률이 아직은 마이너스가 아니어서 디플레이션으로 보기는 어렵다지만 저성장으로 인한 구조적 수요부진이 지속적으로 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유가 하락이 경제성장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하고 소비·투자심리가 살아나지 않으면 디플레이션 우려는 더 커진다. 1천조 원을 훌쩍 넘어선 가계부채 역시 소비를 억제해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장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이 자칫 함께 진행될 위험도 다분하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소비를 끌어올려 물가상승률을 높일 수밖에 없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물가상승률이 최근 몇 년간 1%대여서 이를 구조적으로 오래 내버려두면 디플레이션으로 갈 수 있다"고 그 가능성을 경계한다.
위험수위를 맴도는 가계부채는 더 이상의 총량 증가를 억제하되 가계소득을 높여 위기대응력을 키워주는 길 밖에 없다. 국민 다수의 고용과 소득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역량을 모아야 하는데 그럴 경우 고용유연화 등 대기업위주의 활성화정책과 충돌소지가 적지 않다.
환율의 안정적 관리도 크나큰 과제다. 엔화 대비 원화 가치는 2014년 8.5%나 올랐다. 엔저공세로 국내기업들의 이익이 격감하면서 주가도 1,900선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미국경제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미국 금리인상은 외국인투자자금의 한국 유출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올해 아시아 외환시장은 미국 금리인상과 맞물려 요동치는 한 해를 보낼
것이며 특히 한국 원화의 변동 폭이 클 것이라는 경보도 벌써부터 나돈다.
진행 중인 '러시아 쇼크', 중국의 성장세 둔화에 따른 '중국변수'도 불안요인이다. 3,635억 달러 외환보유고만으로 안심할 수 없고, 글로벌 파고(波高)를 타고 넘을 수 있게 경제체질을 강화하면서 시장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한다.
구조적 문제 해결과 함께 단기적인 경기활성화 대내외 리스크관리를 동시에 실행하려면 정부가 이를 포괄하는 총체적 큰 그림을 갖고 유기적 일관성을 견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부가 벼르고 있는 공공․노동·금융·교육 부문의 구조개혁은 상당한 저항이 따른다. 이들 개혁에 성공한 선진국들은 장기간의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냈다.
공무원의 '철밥통'을 부각시켜 공무원연금을 깎고, 이어 군인과 사학연금, 다시 국민연금을 개혁하는 분리접근방식은 끝없는 갈등을 조장한다. '지속가능한 노후복지연금'이란 큰 틀을 먼저 확립하고 이 틀 속에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퇴직연금까지 지속가능수준으로 개혁하는 정책적 지혜가 필요하다.
구조개혁은 기득권계층이 솔선수범해 고통을 많이 분담하고 정부가 불편부당한 자세를 취할 때 저항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면 부실 또는 경쟁력 없는 부분을 과감히 도려내는 재계 구조조정이 필수다. 경기부양 내지 투자활성화를 빌미로 부실대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나 무분별한 규제완화, 재벌총수 가석방 운운 등은 임시방편이며 장기적인 구조개혁과 배치된다.
주택시장정상화가 부동산투기를 부추기고,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가계부채를 조장하고, 노동시장개혁이 해고를 쉽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정부가 '가진 자' 편에 서서 개혁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 재도약의 발판은 성장 동력확보, 양극화 해소, 인구구조변화에 따른 중장기적 해법이 핵심이다. 소득 분배구조의 악화는 계층 간 대립과 불화를 부추겨 성장잠재력을 훼손하고 부문 간 격차확대, 소득양극화의 악순환 고리로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활성화 보다는 국민다수의 고용과 소득을 증대시키는 소득주도성장으로 고리를 끊어야한다.
저출산․고령화는 생산가능 인구 감소와 노인 복지부담 증가로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구조 변화에 맞는 교육혁신, 여성과 고령자를 활용하는 고용제도 개혁도 시급하다.
이 모두는 정부의 실천의지만으로는 되지 않고 고통분담에 따른 노사정 대타협과 국민적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어렵게 닻을 올렸다. 개별 각론에서 노사의 입장차는 여전하지만 노사가 구조개혁 총론에 동의하면서 개혁의 당위성이나 시급성에 인식을 같이했다는 점이 소중하다.
내년 총선, 후년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전국 단위의 큰 선거가 없는 올해, 특히 상반기가 개혁의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한국은 1996∼97년 노동 및 금융개혁, 부실기업인 기아자동차 구조조정에 실기(失機)하면서 해외에서 불신을 사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비극을 맞았다.
구조개혁과 경제 활성화가 일부 엇박자를 내고, 대내외 리스크요인들이 도처에 도사려있는 상황에서 이 골든타임을 놓치면 우리 경제는 재도약은커녕 한국형 장기침체로 그대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